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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목표는 이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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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 전략을 이라크에 국한해 적용한다면 두 가지 사실이 명백함을 알 수 있다. 중립적인 이라크연구그룹이 내놓은 '베이커.해밀턴 보고서'의 거의 모든 제안이 무시됐으며 새 전략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것이다. 이라크 안정을 위해 제시됐던 이전의 전략들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부시 대통령이 미군 2만1000명을 추가로 파병한다 해도 이전보다 더 성공적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미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이라크 대책 중 정말 흥미롭고 새로운 것은 이라크를 넘어 이란.시리아와 다른 걸프 국가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예기치 않았던 조치들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항공모함 한 대가 추가로 페르시아만으로 출발했으며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도 중동 지역에 배치됐다. 그리고 이라크 현지 미군 지휘부가 요청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2만1000명의 병력이 증파된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적 조치의 배경이 무엇일까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부시의 새로운 정책은 관심의 초점이 이라크로부터 이란.시리아 인근 두 나라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시는 시리아와 이란이 이라크 주둔 미군을 위협하고 중동 지역의 미 동맹국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미군이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서 이란 외교관 다섯 명을 체포한 것과 연관 지어 보면 부시 대통령이 추구하는 새로운 그림이 완연히 드러난다. 새 전략은 베이커-해밀턴 보고서를 따르지 않고 있다. 강경 우파 그룹인 네오콘의 전략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새 중동 전략은 과거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던 때를 연상케 한다.

긍정.부정적 두 가지 측면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부정적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이 이란과의 진지한 협상을 위한 토대 마련을 위한 것이라면 큰 반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실려 있고, 실제로 이러한 전쟁을 시작할 의도가 있다면 그 결과는 재앙을 부르게 될 것이다.

이란이 추진 중인 핵 프로그램은 중동과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공습은 이라크를 더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이란의 정권 교체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와 중동 지역 전체의 안정, 나아가 이란 핵 프로그램의 장기적 동결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은 아직 남아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이란 핵 프로그램의 개발 수준은 즉각적 군사행동을 취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그보다 먼저 시리아를 이란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은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이라는 원래 방식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이라크의 혼란은 처음부터 예상됐던 바다. 미국이 앞으로 저지르게 될 실수도 충분히 예견이 가능하다. 잘못된 전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베트남전의 교훈이다.

군사적 수단에 의한 이란 정권 교체 전략은 미국에 재앙을 던져 줄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미국은 과연 역사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이 무엇이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 그 파장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부총리 겸 외무장관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