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국민이 애타게 바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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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침에 배달된 신문을 펼쳐들면 싸움판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지금까지 줄곧 대통령과 언론, 야당과 여당, 그리고 일부 국민과 또 다른 일부 국민은 서로를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폄하하고 적대시하는 대립과 갈등의 국면을 확대재생산해 왔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와 언론의 관심은 대통령의 말실수와 정부의 설익은 정책, 그리고 그에 대한 조롱에 가깝지만 할 만하면서도 다소 무책임한 비판과 반박, 대선주자들의 요란한 무한경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된 데는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보다 주된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 잘못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모여 그렇게 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직시해 평화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상대에 대한 비난과 불신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고국 가나로 돌아간 코피 아난은 환호하는 군중과 대통령에 출마해 줄 것을 원하는 국민을 향해 "인도와 중국은 기아를 겪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국제활동가들이나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아프리카의 농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쏟아지는 정치적 유혹을 뒤로하고 고국과 아프리카의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이 열렸다. 2300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정계와 산업계의 수뇌, 지성인과 언론인들이 모여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전(全)지구적 문제와 '2007년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이번 포럼의 주제인 '힘의 이동 방정식'에 대한 토론을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한국은 300개가 넘는 포럼 세미나 가운데 단 하나의 주제도 되지 못했고, 26일 '타오르는 민족주의 잠재우기' 세션에서는 한국.중국.일본의 민족주의 갈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지만 중국.일본과 달리 우리 측 참석자는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위의 두 사례는 우리 사회의 현재 단면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지도자들,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데만 매달리지 말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주기를 국민은 애타게 바란다. 100년, 50년, 10년 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바로 지금 그것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노력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자연자원이 부족하긴 하지만 가히 현명하고 근면한 인적자원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적자원의 장점을 잘 살려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 전략을 짜고 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국민은 부지런히 세금도 내고 국방의 의무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은 자신들의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정권을 잡아야 하고, 정치인은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여기에 머무른다면 정당도, 정치도, 그리고 국가도 밝은 미래를 약속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우리 모두에게 좀 더 멀리 보고, 넓게 깊이 생각하는 지혜가 요즘만큼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도 없다.

김형성 성균관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