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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왜 TV수신료 징수 논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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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금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한나라당이 제출한 '수신료 분리고지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 중이다. 오는 27일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처리될 이 개정안의 요지는 현재 한전의 전기료와 통합 고지되고 있는 TV수신료의 징수방식을 분리징수로 바꾸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공영방송 KBS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까지 수신료를 강제로 납부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수신료 납부를 시청자의 선택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공정성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KBS가 경각심을 갖고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길을 갈 것이라는 논리다. 한나라당의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국민이 'KBS 시청료 거부' 캠페인에서 보는 것처럼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수신료 분리징수가 실현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다수 전문가들은 징수율의 저하와 징수비용의 증가로 수신료 징수액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KBS 자체 계산으로는 징수율이 50%로 떨어지고 징수비용은 9백억원이 증가해 수신료 징수액이 약 3천4백억원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KBS 전체 예산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수신료 수입의 비중이 15%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물론 KBS의 이런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KBS가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분리징수를 하더라도 국민이 수신료를 기꺼이 납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 경험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볼 때 분리징수가 이뤄질 경우 수신료 수입이 대폭 감소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수신료 수입이 감소하면 현재 60%에 달하는 KBS의 광고수입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시청률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KBS가 1TV까지 광고방송을 하게 된다면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것이다. 또 KBS가 광고방송 비중을 높이면 가뜩이나 어려운 신문광고 시장이 더욱 위축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9년 전에 KBS 1TV의 광고를 폐지하고 수신료를 전기료에 통합 부과한 것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정권이었다. 당시에는 개혁정책이라고 자랑했던 통합징수를 이제 와서 스스로 거둬들여서는 곤란하다. 만약에 KBS가 이념적 편향성을 시정하고 한나라당이 바라는 그런 공영방송이 된다면 통합징수를 다시 제안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이른바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국민이 불만을 제기한 것은 사실이다. 또 이로 인해 한나라당과 KBS 사이에 긴장관계가 형성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KBS를 보지도 않는데 수신료는 왜 내느냐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영방송의 근간이 되는 수신료 제도를 이런 식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KBS의 이념적 편향이 심각하다고 본다면 KBS 사장 임명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다든가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방송위원회의 심의권을 강화하는 등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일각에서 추측하는 것처럼 이번 개정안 제출이 현재의 공영방송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일부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그야말로 정치권 아니라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속내가 무엇이든 수신료 분리징수안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한나라당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 분리징수안 제출로 KBS에 대한 한나라당의 경고는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개정안을 철회하고 좀더 긴 안목에서 우리 방송의 미래를 고민해 주기 바란다.

양승목 서울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