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여기 이사람] 가양동서 농사 류호긴·선환씨 父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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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의 물결이 편도 3차로인 강서로 앞에서 딱 멈췄다. 그 앞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경계선은 편도 3차로의 강서로다. 길 건너 서울 강서구 가양1동은 지하철 역까지 들어서 있지만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는 서울 속 농촌이다.

류호긴(72)옹과 둘째 아들 선환(43)씨는 이곳에서 6대째 농사를 짓고 있는 토박이 서울 농부다. 류할아버지의 고조 때부터 이 부근에서 흙을 다독였다.

"서울 농부는 뭐가 다르냐고? 농부가 다 똑같지 뭘. 허허."

강서구 단위조합 마을 영농회장이기도 한 류옹은 벼농사 1만4천평에 파와 배추 등 채소 2백평을 재배하는 임대농이다. 한 해 평균 80㎏짜리 쌀 2백90가마를 생산한다. 올해는 '해가 안나서' 작황이 평년보다 20~30% 정도 줄었다는게 류옹의 설명이다.

"먹는 것 빼고 연수입이 한 1천2백만원쯤 되나. 그래서 부업으로 오리구이집을 하지. 농약 대신 오리로 병충해를 제거하는 무공해 '오리 쌀'을 생산하거든. 그 부산물이 오리구이야. 농한기에 조금 보탬이 되는 정도여."

류옹과 아들 선환씨 모두 귀농(歸農)이다. 류옹은 스물네살 무렵 농사일을 때려치우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화공약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17년 만에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땅이 그립더라고. 건강도 엉망이 됐고. 그래도 이게 가업이지 않은가."

아버지와 농사를 짓던 선환씨는 1995년 택시기사로 나섰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게 됐는데 수입이 너무 적어 부담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역시 2001년 다시 돌아왔다."노인네가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씀이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죠."

이들 부자는 말이 별로 없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면이 있지만 의견 충돌도 잦기 때문이란다. "농사는 경험"이라며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아버지와 "어렵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라며 신식을 주장하는 아들 사이의 세대차다. 하지만 선환씨는 류옹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른이 하자는 대로 하면 결국 맞더라"고 싱긋 웃는다.

서울 농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 구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수확물은 직거래로 판매하기 때문에 제값을 받을 수 있어 지방보다 수익은 다소 높다.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농사 지을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농번기에는 류옹 슬하 3남1녀에 며느리.사위까지 총동원된다.

2005년이면 이들 부자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일대 마곡지구가 개발되면 임대농인 이들은 더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김포 등으로 옮겨가서라도 농사를 계속 짓고 싶어하지만 아들은 걱정이 앞선다. 앞으로는 경작지가 3만~4만평이 돼야 농사를 전업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부자 사이에는 일치된 믿음이 있다.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 이들이 농부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에서든, 김포에서든.

민동기 기자<minkiki@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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