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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순씨 "아무도 전화하는 사람 없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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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책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책 쓸 때의 그 감정을 되새겨야 하는 게 너무 괴로워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전 부인이자 자전소설 '30년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을 출간해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배인순(55)씨. 책 출간 이후 밀려드는 인터뷰 공세 때문에 충남 안면도의 한 리조트에 머물고 있었다.

이런 반향을 예견하고도 왜 책을 썼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방송에도 나오고 활동을 재개하는 게 그쪽은 못마땅했나봐요. 그래도 불편한 심기를 아이들에게 표현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배씨가 낳은 세 아들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게 속상해서 펜을 들었다는 게 첫째 이유다.

또 "사실 세간에서는 알 것 모를 것 다 아는데…내가 마치 죄인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내 입으로 토해내지 않으면 남은 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라는 둘째 이유도 덧붙였다.

그의 책에 이니셜로 표기된 연예인들에 대해 말들이 많다고 전하자 "아무도 전화 오는 사람은 없었어요. 나에게 전화해 항의하면 그게 자기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 아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22년의 결혼 생활 동안 겪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했다. 전 남편의 애정 편력은 22년간 자신의 주위에서 벌어진 일이라 안 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연예계에서는 연락하는 친구도 없다고 했다.

"큰 공사 입찰할 때는 온 집안이 쥐죽은 듯 조용했어요. 그러다 안되기라도 하면 얼마나 상심이 크던지…그럴 땐 내가 일부러 아는 술집 마담에게 전화해서 회장님 기쁘게 해드리라고 전화도 했어요." 신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외도였지만, '내가 저 자리라면'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했다고 한다. "한번도 외도때문에 바가지를 긁어본 적 없어요."

이해하고 인내한 이유를 물었다. "내 속은 숯덩이로 변해도 내가 사는 동안은 치마 열두폭으로 감싸안고 가려 했어요. 아이들 생각해서도 그렇고. 언제나 속은 울면서 겉은 웃고 있었죠."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때 왜 참았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쌓이다보니 겉잡을 수 없더라구요. 어느날은 차 뒷자석에 타고 가는데 고가도로의 교각이 나한테 막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며 피했지요. 그게 신경쇠약인줄도 모르고…."

만약 톱가수 자리와 재벌 회장 부인 자리를 놓고 또다시 선택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즉각 답이 나왔다. "다르게 살았을 것 같아요." 미국 진출의 꿈을 안고 동생과 뉴욕으로 갔던 일이며, 일본 소니에서 음반을 취입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배씨는 꿈에 젖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富)가 사라진 지금의 생활에 대해서는 "사람인데 화려했던 지난 날들이 왜 생각 안나겠어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유럽을 오가던 때며…하지만 인생은 공짜가 없는 것 같아요. 재벌가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요"라며 "지난 6년간 백화점에 아예 가지를 않았어요. 아이들 먹을 것 챙겨 주러 식품 매장만 가고. 난 평생 입고도 남을만큼 옷도 있어요. 청바지 입고 캡 눌러 쓰고 사니까 편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에서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 '펄스'에서는 "제 노래 듣지 않으면 안가겠다는 손님이 많아 가끔 노래도 부른다"고 밝혔다. 그때 부르는 노래는 '커피 한 잔'과 '님아'. "그 노래들만 부르면 손님들이 자리에 그냥 앉아 있지를 못해요."

아직도 자신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뻐 내년 2월에는 음반을 취입하기로 했다. "열명중에 두명이라도 내 노래를 듣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부르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 자선 공연도 가져볼 생각이다. 카페 경영, 음반 취입 등 모든 활동의 목적은 '펄'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외롭고 어려운 노인들을 돕는 복지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50대로는 믿겨지지 않는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이제는 미래의 일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책을 쓴 것도 진정한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라고 힘주어 말했다.

안면도=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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