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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선거 갈수록 인플레/왜 타락하나(돈선거 이대론 안된다: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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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좁은 선거구서 졸부들이 손쉽게 매표/광역땐 일당 10만원·특별보너스까지
선거가 회를 거듭할수록 돈으로 왜곡되고 불법타락 양상으로 치닫는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으나 너무 잦은 선거가 주인이라는 것이 선거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4년에 한번 치를까 말까 했던 3공·5공시절과는 달리 6공들어서는 13대 총선이후 다섯차례의 국회의원 재선거 및 보궐선거와 금년의 기초·광역의회선거 등 모두 여덟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를 치른 셈.
87년 국회의원선거도 금권선거라는 비난이 적지않았으나 다섯차례의 보궐선거과정에서 선거꾼과 운동원들에 대한 단가를 올려놓았고,특히 기초의회선거에서 건설업자·토지소유자 등 졸부출신 선거초년생들의 무분별한 돈경쟁이 금권선거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이 때문에 3개월의 시차를 두고 치러진 시·도의원선거에서는 「돈 맛」을 안 선거꾼과 운동원들이 선거범위가 작은 기초때의 예를 들며 「몸값」이나 「일당」의 인상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유권자들 역시 『시·도의원이 시·군·구의원보다 못해서야 되느냐』며 접대의 수준이나 봉투의 두께를 비교했다는 것이 한결같은 지적이다.
후보가 쓰는 선거비용의 50∼60%가 선거꾼과 운동원의 이른바 조직가동비로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비용이 갈수록 치솟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18억원을 사용했다는 대구 S구의 한 민자당후보는 선거꾼 스카웃비와 운동원 일당이 기초때보다 2∼3배 뛰어올랐다고 털어놓고 있다.
2천5백표를 확보해줄 수 있다고 제의해온 한 선거꾼은 기초때 3천만원에 계약했었으나 이번에는 선거운동범위가 넓다는 이유로 6천만원을 요구했으며 선거를 치러본 경험이 없는 입장에서는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 후보는 5천만원짜리와 6천만원의 선거꾼 2명을 고용,1억1천만원을 지불했다.
옆지역의 민자후보는 1억2천만원짜리 거물급 선거꾼을 경쟁끝에 스카웃했으며 후보당 1∼2명의 선거꾼을 채용했다고 전한다.
치열한 경합지구일수록 운동원과 전화부대에 대한 일당도 두배정도 뛰기는 마찬가지.
인천 B구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출마한 한 민주당후보는 학생 1백50명,주부 80명,직능단체 관련인사 70명 등 모두 3백여명의 사조직을 가동했는데 후보등록 직후 기초때와 같이 3만원을 지급했더니 여당후보측에선 7만원씩 준다며 대부분이 나오지 않더라는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야당에 무슨 돈이 있느냐고 설득해 보기도하고 절충안으로 5만원을 제시했으나 별무효과. 결국 이 후보는 여당후보와 같은 수준인 일당 7만원에 식대 1만원,교통비 5천원씩 1인당 8만5천원을 매일 지급했고 이 비용이 4억원 이상 소요됐다는 설명이다.
가장 손쉬운 작업이라는 전화부대도 기초때는 2만원하던 것이 이번에는 4만원으로 인상됐다는 것.
이밖의 대부분 농촌지역도 5만원선. 서울·부산·대구 등 대도시는 7만∼10만원이라는데 여야의원들은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여야의원들은 고민하고 있다. 14대 총선이 불과 몇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사조직과 공조직을 풀가동시켜야하는 국회의원선거때는 선거구가 광역선거구의 3∼4배 가량되므로 20억원 이상은 가져야 선거를 치른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공천때부터 현금동원능력을 내부기준으로 삼고 당선을 위해 조직가동·매표 등의 비법을 동원한 결과가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오게된 것이다.
금권·타락·과열 양상이 갈수록 심해지자 매표행위가 공공연히 저질러졌다.
동 또는 면 대표격인 기초의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유권자라 해봐야 전국 평균 7천9백45명. 농촌 및 중소도시의 일부 경합지구에서 3∼4명의 후보가 나섰다고 할때 투표율이 60%라고 치더라도 1천5백∼2천표만 확보하면 안정권에 든다는 계산에서 의식수준이 높은 청년들을 제외한 노인층과 장년층에 대한 현금공세를 벌였고 이러한 매표행위가 즉효를 거뒀다.
이 때문에 광역선거는 더 심해졌다. 선거구당 유권자수가 평균 3만2천4백28명인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을 70%로 잡고 6천∼8천표만 확실하게 확보하면 당선된다고 계산,적지않은 후보들이 이들에 대한 현금공세를 집중적으로 했다는 얘기다. 부산의 Y구에서 당선된 여당후보의 선거관계자는 선거일 이틀을 앞두고 저소득층 6천명을 상대로 현금봉투를 돌렸다고 실토하고 있다.
시장상인등 면식이 없는 일반 유권자에게는 3만원씩을 넣었고 지역내에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에게는 비중에 따라 30만원,50만원,1백만원짜리 세종류의 봉투를 건네 막판 금품살포 1회에 3억원 정도가 소요됐다고 했다. 사랑방좌담회 비용 1억원은 별도.
현금봉투 살포는 주로 농촌·중소도시와 대도시 변두리지역에서 극성스러웠다.
부동산 졸부들이 대거 출마한 대전과 충남 일부 지역에서 특히 극심했다.
서울 R구의 여당후보는 운동원들에게 「당선 보너스」제라는 신종 돈뿌리기 수법을 사용했다. 선거 2∼3일전 25개 투표구책을 불러 야당보다 많은 표를 얻은 투표구에는 5백만원씩의 보너스 지급을 약속,이중 17개 투표구에 이를 지급했다. 부산 N구 출마자는 프로야구의 파랑새존제를 원용해 표가 확실한 학우회·교우회 등을 데려올 경우 1백만원이 입금된 예금통장을 지급했는가 하면 5명 이상의 새로운 운동원을 모집해오는 운동원에 대해서는 1인당 2만원씩의 특별보너스를 지급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에서는 투표당일 투표장 안내를 한다며 봉고차 8대를 동원,투표장으로 이동하는 차안에서 5만원짜리 봉투를 건넸고,서울 도봉에서는 노인들만 주로 골라 자가용으로 모시면서 막판까지 현금공세를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0억∼25억원을 쓰고도 낙선했다는 대전에서는 유권자 40명을 1조로 묶어 서울백화점으로 데려와 5만∼10만원 상당의 쇼핑을 대행해주는 수법으로 돈을 뿌렸고,충남의 한 농촌지역에서는 제주도관광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내년 1월의 국회의원선거를 비롯,기초·광역자치단체장,대통령선거 등 줄줄이 이어질 선거일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으면 이미 금권·타락으로 왜곡된 선거풍토가 선거망국론으로 이어질 판이 됐다.
금권선거의 싹이 더 자라기전에 과감하게 자르는 방책이 화급한 까닭이다.<문일현기자>PN JAD
PD 19910706
PG 03
PQ 02
CP HS
CK 02
CS D01
BL 1490
GO 사설
TI 사회를 밝게 하는 사람들/보호선도대상 수상자들이 비추는 빛(사설)
TX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는 온통 어둡고 깊이 병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범죄가 날로 극성을 떨고 부패와 타락도 갈수록 그 도가 심해져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안 있어 우리 사회는 스스로 썩어 무너져버릴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마저 갖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면 그러한 가운데서도 사회는 결코 썩어 무너지지는 않았고 꾸준히 발전해오기까지 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과연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을까. 사회란 원천적으로 아무런 노력없이도 발전해가게 마련인 것인가.
아닐 것이다. 세상에 원인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 분명히 한쪽에서는 병들고 썩어가는데도 전체적으로는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면 그것은 누군가 남이 알아주든 말든 그것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이 없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래도 우리사회에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이 많고 악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보다는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이 더 많았던 때문인 것이다.
중앙일보사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마련,5일 시상식을 가졌던 보호선도대상의 수상자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길게는 30여년의 세월을 전과자와 비행청소년들의 뒷바라지에 바쳐왔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 하지만 일단 비뚤어진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올바른 삶으로 인도한다는건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다. 정성과 인내를 갖춘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자기희생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기껏해야 정신적인 만족감이 있을 뿐 다른 보상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상자들은 바로 그러한 일에 보람을 느끼며 묵묵히 그늘에서 일해온 것이다.
우리들은 당연히 이런 사람들에게 우선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경의를 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들도 설사 그들처럼 헌신적이지는 못할지라도 나름대로 우리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사회의 건강을 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수상자들의 바람도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사회에 범죄가 많다고 탓하기 이전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위에서부터 전과자나 비행청소년의 선도에 좀더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보여준다면 사회는 한층 더 밝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 범죄의 45%는 전과자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이는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은 좀처럼 올바른 삶을 이뤄나갈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올바른 삶으로 인도하는 사회적 노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력은 커녕 전과자들에 대한 부당한 편견으로 그들의 사회복귀노력에 찬물을 끼얹기까지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수상자들은 전과자나 비행청소년들에 대한 노력보다도 그러한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범죄는 결코 공권력의 단속만으로 다스려질 수 없는 것이다.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분위기속에서도 인간본성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니고 이타주의와 공동선을 꾸준히 추구해나갈 때 비로소 범죄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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