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증후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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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복잡해지는 사회양상에 따라 우리 나라에도 신종 스트레스 증후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상사와 부하사이에 끼여 이 눈치 저 눈치 보게되는 중간 관리자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샌드위치 증후군」이 있다. 그리고 일하는 여성 중 특히 철저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쳐 그것이 과도한 중압감으로 다가오는「슈퍼우먼 증후군」, 또 목표를 향해 계속 정진해 오던 사람이 불안정한 인사 이동 등으로 막바지에 와서 갑자기 축 처지는 상태에 빠지게되는「탈진 증후군」,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보다 빠르게 일하고 싶어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보다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하루종일 긴장하는 타입에 찾아오는「24시간 증후군」이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신종 증후군들을 생각하며, 참으로 어렵고 고달픈 세상살이라는 느낌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된다.
방송을 통해 감지된다는 나의 이미지-무작정 밝고 다소 맹랑한 여자-뒤에는 날마다 증발욕구에 시달려는 음습한 또 다른 자아도 숨어있다는 사실이 그야말로「고독한 개체」라는 말을 실감나게 만든다.
내가 그리고 있는 음악방송의 진행자는 바로 그러한 현대인들의 소외와 고독을 끄집어내어 다독거려 주기도 하고, 때로는 청취자와 더불어 지적유희나 심리전을 펴기도 하는 존재다.
그러나 비오는 날에 태어난 하루살이가 온 세상이 비만 오는 줄 알고 죽어가듯 DJ라는 사람들도 직접경험의 한계에 부딪쳐 청취자와의 교감에 실패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으로 열린 더듬이를 따라 늘 종종걸음을 치게된다. 요즘은 왠지 몇달전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감행했던 30대 여류작가의 유서내용이 문득 찡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견딜 수 없노라는 그 말이….
스트레스와 고독뿐 아니라 이 권태라는 놈과 대결하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시지프스의 신화만큼이나 처절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절망은 이르다. 이른 아침, 처진 어깨로 일상의 터전을 향해 나가는 이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총천연색 쇼를 보여주고 싶다.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고독과 권태에 함께 저항하기도하며, 때로는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에 메스를 가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통한 의식의 확산으로 단 1초에 영겁의 세월도 붙잡아 넣을 수 있는,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려 소위「영원한 현재」를 나누고 싶은 것이 방송인으로서의 나의 바람이다. 【이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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