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잡는 여성연극|극단 산울림의 『엄마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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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극단「산울림」의 신작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는 극단이 추구해온 「여성연극」의 확실한 뿌리내림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는 유대계 프랑스 여류작가 드니즈샬렙 원작으로 「모녀」라는 두 여자의 갈등과 사랑을 차분히 펼쳐 보인다.
이 작품은 산울림이 추구해온 「여성연극」의 흐름 속에서 바라볼 때 더 재미있다.
산울림이 여성연극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86년 『위기의 여자』공연의 대성공에서 여성관객의 잠재성을 확인하면서부터. 산울림은 특히 지난해 5월 『위기의 여자』를 극장개관 5주년 기념작으로 리바이벌 한 이후 1년 넘게 계속 여성연극만 성공적으로 공연해 왔다.
이번 공연은 이전의 작품들보다 본격적인 여성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작품이 여자를 구속하는 남자, 크게는 사회구조를 대립점으로 삼은 반면 이번 작품은 여자끼리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위기의 여자』에서는 바람피우는 남편이, 『프쉬케, 그대의 거울』에서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이,『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는 남존여비의 사회적 구조가 여성관객의 공분을 자아내었다.
그러나 『엄마는…』에서는 적이 없다. 모녀간의 갈등은 무한한 애정과 이해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공감을 끌어낸다.
얘기자체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회상 속의 갈등은 내레이터인 딸의 현재 시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종의 사모곡인 셈이다.
따라서 『엄마는…』에는 공분의 격정이 없다. 하지만 더욱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은 여류작가의 섬세함과 이를 무대 위에서 표현해내는 두 연기자의 역량 때문이다.
엄마역의 박정자씨가 『강변도로에서 제 갈 길을 거부하던 시동 꺼진 내 자동차처럼 연민 어린 오십에 나는 섰다』고 말하듯 극중의 인물과 자신을 일치시켜 연기해낸다. 때론 주책스럽고 호들갑스럽지만 슬픔과 외로움을 속으로만 삭인다.
딸 역인 탤런트 겸 성우 오미희씨의 연기도 밋밋하지만 차분해 어울린다.
산울림 여성연극의 성공은 기본적으로 대표 겸 연출 임영웅씨와 기획 겸 번역자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불문학) 부부간의 협력에서 가능했다. 7월28일까지 화·수·목 오후 7시30분, 금·토·일 오후 3시30분·7시30분. 334-5915.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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