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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당 “사회주의 노선 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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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당대회서 정치개혁 거부/원로당원 대거퇴진 예상
【하노이 AP·AFP·로이터=연합】 베트남 집권 공산당은 24일 제7차 당대회에서 동유럽을 비롯한 다른 공산국들을 휩쓸고 있는 다당제 도입등 정치개혁을 거부하고 사회주의 노선을 고수할 것을 재확인했다.
경제개혁의 착수를 선언한 지난 86년의 제6차 당대회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정책상의 변화는 예상되지 않으나 당원로들이 대거 퇴진할 것으로 보인다. 75세의 고령인 구엔 반린서기장을 비롯,대불,대미전쟁의 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보 치 콩 대통령(78),구엔 코 타크 외무장관(68)등 원로 지도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 공산혁명 제1세대인 팜 반동 전총리와 같이 특별 고문역을 맡게될 것으로 보인다.
린서기장의 후임으로는 린과 같이 급진개혁파와 수구파 사이에서 절충역할을 맡고 있는 도 무오이 총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1천1백76명의 대의원들은 대회 이틀째인 25일 신임 서기장 및 중앙위원을 선출하고 새로운 당규를 비롯한 일부 정책강령을 승인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관리는 이번 대회에서 50대와 60대 초반의 제2세대가 새로운 세력으로 세대 교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대회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쿠바·소련등 4개국 공산당만이 대표를 파견하고 중국등 다른 공산국들은 하노이 주재 외교관들이 참석함으로써 36개국 공산당이 대표를 파견했던 지난번 대회에 비해 베트남의 고립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베트남 공산당 창시자 호지명의 묘소참배로 시작된 이번 대회에서 린 당서기장은 개막연설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정치적 다원주의와 다당제 수립은 객관적으로 필요치 않다』고 말하고 『우리는 명백한 당지도 아래 사회주의를 추구하려는 염원을 재확인하며 사회주의만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당이 하나인가 여러개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하고 지난 75년 붕괴한 친미 월남정권에 언급,『과거 괴뢰정권에는 많은 정당들이 있었으나 아무도 당시 민주주의가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트남에 다당제를 도입할 경우 반동세력의 출현으로 경제성장이 방해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이는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유럽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치개혁에 언급,사회주의가 『여러 방향에서 유례없는 강력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경제개혁과 함께 정치제도도 단계적으로 쇄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치의 성급한 개혁은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개혁과정 전반에 걸쳐 난관과 장애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동유럽과 소련을 간접적으로 언급,정치개혁으로 인해 공산당이 지도력을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른 나라들이 남긴 교훈이라고 말했다.
◎권력유지위한 “고육책”/체제변혁 압력에 역민주화로 대처(해설)
베트남공산당 지도부가 24일 개막된 제7차 당대회에서 정치적 다원주의를 배격하고 일당독재사회주의노선 고수를 거듭 천명한 것은 당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베트남 당지도부는 당대회를 앞두고 가진 당수뇌모임에서 일당주의의 시대 역행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동요하는 사회주의를 굳게 지켜내고,자본주의의 오염을 막기위해서는 일당독재체제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베트남 정부가 고심끝에 역민주화조치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소련·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현상에 접해 명백히 동요를 드러내고 있는 베트남정국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사정이 깔려있다.
사실 「잘 밀봉된 용기」를 연상시키던 베트남이 서서히 누수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파리에서 부이 친 전당기관지 편집국장이 일당체제를 비판한 사건이 터져나온데 이어 베트남 최고의 인기여류작가인 즈온츠 혼여사가 반국가사범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더구나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인 「도이 모이」(개혁)정책으로 사유경제에 눈뜨게 된 국민들로부터의 만만찮은 체제변혁압력도 오히려 공산당 자체를 더욱 안으로 움츠러들게 만든 요인이 됐다.
베트남 당지도부가 일당체제를 고수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이번 7차당대회에서 대폭적인 인사물갈이와 정책변혁은 불가피한 형편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베트남의 최근 경제·외교·정치동향을 미뤄볼때 분명해 진다.
우선 베트남경제가 도이 모이 초기의 활황기조를 잃어버리고 다시 종전의 침체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난 86년 제6차 당대회에서 서기장에 취임한 구엔 반린 서기장이 소비재공급에 역점을 둔 대경제정책을 도입,천정부지로 치솟던 인플레를 가라앉히는데 성공했다.
이어 89년에 접어들면서 베트남은 세계 제3위의 쌀수출국으로 부상하는등 괄목할만한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그럼에도 불구,지난해부터 베트남경제는 ▲소련·동구로부터의 원조가 끊기고 ▲서방측이 무역대금으로 경화결제를 요구하고 나섰으며 ▲최대식량 수입국이었던 이라크의 몰락으로 식량·노동력수출이 격감하는 바람에 큰 곤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서방국가들의 대베트남투자도 캄보디아사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베트남 경제에 큰 타격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정치상황도 난마처럼 얽혀있다.
중앙정부의 지도력부족과 과도한 분권화로 인해 행정기관·기업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로인해 전국적인 경제재건계획은 물론 국가예산조차 제대로 입안,추진하지 못하는 상태다.
아울러 정치조직과 맞물려 있는 기업·개인·가계등 기본경제단위가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해 갈팡질팡 하고 있다.
베트남정부는 이같은 정치·경제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미 당강령 및 규약등을 수정,▲산업기술개발과 적절한 산업배치 ▲국가관리하의 시장경제촉진 ▲정치민주화추진 등을 명시해 놓았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구호만의 도이 모이로는 베트남의 현 위기상황을 결코 타개할 수 없다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실천적인 도이모이 추진계획이 당총의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먼저 「당의 도이 모이」를 제쳐두고 출발한 이번 7차당대회가 어떤 획기적인 개혁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는 것만같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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