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대 0으로 닫아버린 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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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 결과가 압승이었든 참패이였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과 당 수뇌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더구나 총선·대선도 아닌 시도의회의원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해서 그것이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 놓는 담보가 될 수 없듯이 참패의 결과를 두고 공당의 총재가 응당 물러나야 하고 당을 해산시켜 새 모습으로 등장하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가 광역선거의 결과를 두고 압승한 여당에는 겸허한 자세를,참패한 야당에는 뼈를 깎는 자성의 계기를 요구했던 까닭은 이번 선거야말로 민주화 갈등 4년을 겪은 민의의 심판이고 민심의 소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정희구속의 민주개혁으로 요약될 민의의 결과를 여야정당이 어떻게 수용하고 변모된 모습을 갖춰야 하는가를 묵시적으로 제시하는 지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참담한 패배를 자인한 신민당의 당무회의에 관심을 쏟았고 예상된 결과에대해 예정된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야당,특히 신민당의 참패요인중에는 야권분열과 지역당에 대한 거부반응이 크게 작용했음을 자타가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자성과 개혁보다는 51대 0이라는 기립투표로 현체제 고수라는 결의만 다짐한데 대해 다시 한번 실망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건실한 야권통합이 민주개혁을 위한 정도이고 지역당을 벗어난 전국적 이미지의 정당이 대권으로 가는 길임을 역설하는 통합파 의원의 냉엄한 지적과 총재의 이선후퇴가 야권통합의 시발이라는 방향제시가 있었음에도 기립투표라는 비민주적 방식으로 새출발로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마치 선생님을 앞에 두고 선생님을 규탄해야 하는 학생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당무회의에서 보는 듯 착각마저 들게 한다.
현체제 고수라는 결의는 곧 야권통합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겠다는 뜻이고 지역당의 한계를 넘지 않겠다는 자족의 의사표시로 받아 들일 수 있다.
물론 이런 당무회의의 결의가 곧 향후 신민당의 진로를 결정짓는 최후의 결정이라고 볼 수도 없고 야권통합의 길이 모두 봉쇄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리멸렬한 민주당은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나 민자당과의 득표율 차이는 7.4%이고 서울의 의석수는 줄었지만 신민당 지지율은 증가했다는 안이한 현실인식은 이번 선거를 패배로 인정치 않는 자세임과 동시에 남은 한가닥 기대마저 사라지게 하는 느낌이다.
우리는 야당총재 한 사람의 진퇴가 국민적 여망인 야권통합을 통한 건실한 야당 정립에 걸림돌이 된다는 상황을 슬퍼하며 그것이 걸림돌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이에 대한 개선과 개혁의지를 보이지 않는 정당인들의 수준에 다시 한번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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