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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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퇴가 분명한 지도자로는 드골만한 인물이 없다. 프랑스의 영광을 이끈 그는 종전후 잠시 총리자리에 앉았다가 초야로 돌아갔다. 그러나 1958년 알제리 사태로 무정부 상태에 이르자 드골은 정치무대에 다시 나섰다. 구국일념의 결단이었다.
집권 10년이 넘으면서 학생들의 반정부 데모가 일어나고 국민들도 그의 통치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드골은 미련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귀향해 버렸다.
드골은 자신의 무덤앞에 세운 묘비명에서까지도 미사여구와 수식어를 사양했다.
「드골」이라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표시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진퇴가 끈적끈적해 망신당한 인물로는 닉슨을 꼽아야 할 것이다. 워터게이트사건이 폭로되었을때 진작 그 내막을 밝히고 국민앞에 겸허하게 사과했으면 그는 국민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닉슨은 끝까지 미적미적 하다가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통해 꼼짝없이 자신의 혐의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는 61%의 지지도 무위하게 대통령자리에서 밀려났다.
노자는 일찍이 공을 세운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했다. 중국 역사상 진퇴가 명료한 인물로는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범려와 진나라의 범수를 친다. 이들은 정권을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욕심을 억제할줄 모르면 욕심을 둔 그 자리를 잃게 되고,가진 것에 만족할줄 모르면 가진것까지 잃게 된다.』
재상자리를 뿌리친 범수의 충고였다.
자,눈을 우리의 정치현실로 돌려본다. 어느 야당의 총재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그야말로 신명을 바친 인물로 존경받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가 만일 그것으로 만족하고 정치권력의 더러운 싸움판에서 초연해 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그를 찾는 외침이 하늘에 솟구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반대의 현실속에 있다. 존경받을 지도자는 이 순간 「진」이 아니라 「퇴」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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