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들쭉날쭉 우울증' 자살 충동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가수 유니의 자살로 또다시 자살과 우울증이 신년 벽두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자살자 수는 2005년 1만2000여 명으로 사망원인 4위를 차지한다. 배후에는 우울증(80%)이 도사리고 있다. 우울증만 제대로 치료.관리해도 매년 1만여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의 응급상황인 자살의 실체와 예방법을 알아본다.

◆ 다양한 모습의 우울증=우울증은 뇌의 신경 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지면서 감정과 행동에 변화가 초래되는 뇌질환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재미.흥미 등과 관련된 도파민, 우울.불안.초조 등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민첩성을 나타내는 노아에피네프린 등 세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이 모두 떨어진다"며 "자살 시도는 특히 세로토닌 감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밝힌다.

우울증은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어떤 환자는 의욕이 없고, 먹고 자는 사소한 일상생활조차 힘겨워한다. 반면 또 다른 환자는 일 욕심은 있어 보이나 매사 '나는 뭘 해도 되는 일이 없다'는 식의 비관적 사고가 주된 증상으로 나타난다.

노인 우울증은 여기저기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등 신체적 불편함을 주로 호소한다. 또 민첩성이 감퇴돼 기억력.집중력이 심하게 떨어진다. 피해망상도 잘 동반되는데 이땐 식구들에게조차 "내 식사에 탈날 음식을 넣었지?"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 밖에도 청소년 우울증은 짜증을 많이 내면서 반항.비행.성적 저하 등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흔하다.

◆ 자살위험이 큰 우울증=우울증 환자의 자살은 증상이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할 때 위험성이 높다. 예컨대 모든 일이 재미 없고, 의욕이나 기운이 없는 우울증 환자는 자살할 만한 여력도 없다. 반면 생활에 흥미를 느끼고, 의욕은 있지만 삶이 힘들고 절망적이란 생각을 하는 환자는 분노심을 자살로 표현할 가능성이 크다.

노인 우울증도 자살률이 높다. 미국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사망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이 문제 해결책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자살 위험성을 높인다. 예컨대 생활고로 비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이웃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자살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수단이 되는구나'라며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

하 교수는 "지속적인 슬픔.절망.죄책감.멍함.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평상시 가졌던 관심사에서 멀어지면서 삶의 애착을 버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자살이 임박했음을 인식하고 즉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자살 예고증상은 응급상황=일단 자살을 계획하면 '마약보다 진한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따라서 즉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통상 우울증은 약물로 잘 치료되지만 약효는 2~3주 후 나타난다. 하지만 구체적인 자살 의도를 보인 환자라면 기다릴 여유가 없다. 입원시켜 자살 시도를 예방해야 한다.

우울증을 동반하지 않는 자살은 충동적 성격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이런 경향의 사람이 파산.이별 등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땐 주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으며, 내가 힘든 당신의 상황을 공감하면서 늘 친구가 돼 주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한두 달 지속적으로 전달하라는 것. 특히 자살 기도는 재발 위험이 크다. 따라서 정신과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