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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확보조차 어려운 원전|고장 줄이기 "초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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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 여름 전력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따금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을 멈출 때마다 제한 송전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원전의 발전중단은 올 들어서만 18건으로 작년 한해(18건)와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지난달 23일에는 고리1호기 가동중단으로 전력예비율이 올해 최저수준인 2·2%까지 떨어졌다.
원전은 수력·화력에 비해 발전용량이 크기 때문에 1기만 고장나도 이처럼 전력예비율을 뚝 떨어뜨린다.
국내에서 가장 발전량이 적은 고리1호기(58만7천㎾)만 하더라도 45년 해방당시 남북한 전력수요의 대부분을 담당했던 압록강 수풍발전소(60만㎾)와 맞먹는 규모다.
따라서 전력예비율 최저수준을 맴도는 데다 지금처럼 여름철 전력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때 원고 1기라도 고장이 난다면 당장 전력수급에 차질을 초래할 것은 당연하다.
이 같은 현실은 원전이 국내전력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현재 국내 원전은 9기에 불과하지만 총7백61만6천㎾의 전력을 생산, 전체발전량의 49·1%(90년 기준)나 담당하고 있다.
또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걸프사태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원료구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발전원가가 저렴한 원전을 더 많이 지어 에너지자원의 다변화를 꾀해야 할 입장이다.
원전 발전원가는 ㎾당 23·75원(90년 기준)으로 벙커C유 발전소 37·88원, 석탄 30·95원보다 싸다.
생산원가에 차지하는 연료비 비중도 벙커C유 62·5%, 석탄 58·7%인데 반해 원전은 16·0%에 불과, 한번 발전소를 지어놓으면 싼값으로 전력을 계속 생산해낼 수 있다.
외국에서도 미국 스리마일(79년3월), 소련 체르노빌(86년4월) 사고이후의 반핵운동으로 원전건설이 한때 주춤했다.
그러나 석탄·석유가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공해물질로 여론의 지탄대상이 되면서 원자력은 오히려 무공해 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 원전건설은 다시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원전건설의 세계적 추세와 국내 현황, 당면한 과제 등을 점검해 본다.

<국내현황>
68년 원전건설계획이 구체화돼 78년 고리1호기가 완공, 가동됨으로써 본격적인 원자력발전시대를 맞이했다.
원전건설은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활발하게 추진돼 현재 고리에 4기, 영광과 울진에 각각 2기, 월성에 1기 등 총9기가 완공, 가동 중이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90년의 경우 7백61만6천㎾로 국내발전량의 49·1%를 차지하고 있다.
원전 가동으로 77년 89·3%에 달했던 석유발전비중이 90년에는 24·1%로 뚝 떨어져 값비싼 석유를 절약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에너지원 다변화에도 기여했다.
현재 건설중인 원전은 영광3, 4호기 2기로 95∼96년 완공목표로 39%의 공정 진척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함께 오는 99년까지 월성 2, 3, 4호기를 완공해 옥광 3, 4호기와 합해 5기로 총4백70만㎾를 공급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잠기전력수급 계획을 마련, 오는 2006년까지 13기의 원전을 신규 건설(총 시설용량 1천1백40만㎾), 발전설비 기준으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90년 36·2%에서 2001년 33·5%, 2006년 39·7%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고장대책>
원전이 고장 없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올 여름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올 들어서만도 고장이 18건으로 89년 13건, 90년 18건과 비교할 때 유난히 잦다.
특히 고리1호기는 일곱 번이나 고장을 일으켰다.
한전측은 대부분 고장 원인이 안전제어장치의 이상이라고 밝히고있다.
원전이 우라늄이라는 위험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안전을 위해 제어장치가 발전소 가동을 중단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력난으로 원전을 무리하게 가동, 이처럼 잦은 고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발전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90년 기준)은 36·2%에 불과하나 실제 발전량 비중은 49·1%로 원전이 얼마나 혹사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또 고리1호기는 설비 노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외국회사들이 기자재를 납품할 때 기술누출을 우려, 블랙박스화 한 것도 점검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의 기술수준이 미흡해 기술자들의 실수로 고장이 일어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구 고리원자력본부장은 『고장이 날것으로 우려되는 부품은 사전에 미리 갈아버리는 예측보수체제를 도입, 올 여름 원전고장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고장이 나야 부품을 교체하는 이제까지의 방식을 버리고 사전에 고장날 곳을 미리 예측,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또 보수요원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신상필벌을 통한 책임보수제도를 확립, 실수에 의한 고장을 막겠다고 밝혔다.

<입지 확보>
에너지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지속적으로 원전건설을 늘러나가야 한다.
그러나 방사능물질 누출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와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집단 이기주의로 원전건설을 위한 입지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06년까지 원전 13기를 새로 세울 계획이나 2기를 제외한 11기는 어느 지역에 지을 것인지 후보지역만 정했을 뿐 주민들의 반대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또 99년까지 세울 영광·울진의 5기도 기존 원전단지에 추가로 세우는 것이지 별도의 입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 같은 현상은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안면도 사건 이후 영구처리장 건설계획은 아직도 미정상태다.
고리원전의 경우 기존 3동의 처리장 시설로는 저장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추가로 1동을 지을 계획이지만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1일 진념 동력자원부장관이 고리원전을 방문했을 때도 주민대표들은 진 장관을 면담, 처리장 추가설치계획을 취소하든지, 아니면 이에 대한 응분의 보상(주변 그린벨트 해제 등)을 요구했다.
한전관계자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고있으나 지역주민들의 주장이 갈수록 완강해지고 있어 2000년대를 바라보고 추진하고 있는 전원개발계획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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