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충격 가시기도 전에 … 공황에 빠진 통합신당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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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신당'을 추진하려던 열린우리당에 '법원발(發) 쓰나미'가 덮쳤다.

서울 남부지법 민사51부(부장판사 박정헌)는 19일 열린우리당 당 사수파가 당을 상대로 제출한 당헌 개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헌상 비상대책위원회가 독자적으로 당헌 개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당헌 개정은 중앙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개정 당헌을 전제로 다음달 14일 전당대회를 열고 통합신당을 추진하려던 열린우리당의 구상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 지도부는 '설마'했던 일이 현실화하자 긴급 비대위를 열었다.

비대위 회의에서 김근태 의장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강래.정장선 의원 등도 비대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상적인 지도부가 물러나 비대위 지도부가 꾸려졌는데 그 지도부마저 물러나겠다고 하는 형국이다. 당을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적극 만류하고 있어 실제 사퇴할지는 미지수다.

가처분신청을 냈던 당 사수파 기간당원 11명도 법원 결정 후 기자회견을 하고 "당의 위기를 수습하고자 출범한 비대위가 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당헌까지 불법으로 개정한 이상 정당성이 없다"며 "현 비대위는 즉각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전당대회 준비위원회(위원장 원혜영)의 모든 결정사항도 무효일 뿐 아니라 2.14 전대도 물리적으로 힘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통합신당 배가 좌초하고 있다. 목표 지점이었던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한테 격침됐고, 에너지원이었던 전당대회는 법원 쓰나미에 덮쳐 고장나 버렸다.

당의 한 관계자는 "고건 전 총리와 전당대회라는 통합신당의 '쌍둥이 빌딩'이 노 대통령 골수 지지세력의 치열한 공격에 무너져 '그라운드 제로'로 무너져 버렸다"고 자조했다. 오히려 통합신당을 반대하는 노 대통령과 친노파, 당 사수파가 다시 힘을 얻어가고 있다.

통합신당이 좌초하면서 이른바 범여권 정비의 주도권을 노 대통령 계열이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대위는 일단 중앙위를 소집해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고 전대를 치른다는 방침이다. 한 참석자는 "중앙위 소집 일정을 고려하면 전당대회는 3월 5일께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전대 무용론'이 퍼지고 있다. 결국 전대는 무산되거나 치러지더라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가능성이 커졌다.

당 사수파인 김형주 의원은 "당헌 개정 이전의 기간 당원들로 전대를 치르자"고 말한 반면 한 통합신당파 의원은 "이런 문제를 법원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과 당을 같이해야 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비대위원인 정장선 의원은 "가처분 결정은 결국 비대위에 권한이 없다는 얘기 아니냐"며 "전대를 연다 해도 당이 입은 상처는 너무 크다"고 했다.

김정욱.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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