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도 정신차려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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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정치판의 무능과 타락·부패상은 국민들에게 이미 상식화된 인식으로 자리잡혀 있다. 국리민복은 구두탄에 그치고,당리당략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의 왜곡과 이권개입·금품수수 따위가 우리 정치인의 관행이 된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 책임의 큰 몫은 궁극적으로 그런 정치인을 선출한 유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특히 6공에 들어와서는 그렇다.
광역선거전이 본격화 되면서 이번 선거에서도 과거의 개탄스런 작태가 더욱 노골화되는 느낌이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공천단계에서의 금품거래와 후보사퇴 압력,유권자에 대한 금품살포 따위가 밝혀져 정치판에 대한 국민의 환멸과 염증의 골을 더욱 깊게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인 또는 정치지망자들의 타락과 부패상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공명선거를 위한 감시와 고발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유권자들 또한 표로써 입후보자를 가차없이 심판하고 단죄하는 본때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입후보자들의 불법과 타락을 감시하고 응징해야 할 유권자들 일부가 오히려 입후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면서 매표행위를 획책하고 있다고 한다. 각종 모임이나 단체의 행사 또는 행락을 빌미로 입후보자들을 찾아가 표를 몰아줄 터이니 경비를 대라는 식의 노골적인 금품요구 사례가 전국 도처에서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권자의 타락사례가 전반적인 경향은 분명 아니다. 또 해당 모임이나 단체 전원의 의사가 아니고,일부 유권자들 또는 선거운동원이나 표몰이꾼들의 농간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점에서 이런 행사를 벌이고 또 이에 참여하는 행동자체가 입후보자의 금품살포를 묵시적으로 용인하고 타락된 선거관행을 부추기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과거에 횡행해온 「막걸리 선거」「현금봉투선거」의 답습이 아닐 수 없다.
유권자들의 표의 향방이 입후보자의 금품에 의해 좌우된다면 국민은 이중의 피해를 본다. 그 하나는 양심적이고 능력있는 인물을 놓치는 것이요,또 하나는 우리 정치가 무능과 타락의 고리에서 풀려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타락상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대상은 선거철만 되면 거의 직업적으로 나서는 표몰이꾼이다.이들이야말로 후보자와 유권자를 타락선거로 이어주는 악의 연결고리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이들을 고발하고 배척해서 발붙일 곳을 없애야 한다. 그렇게 않는다면 앞으로 연이어 있을 각종 선거는 보나마나 타락의 심화로 나타날게 뻔한 일이다.
투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참정권 행사의 유일한 형식이요,기회다. 가두에서 정권타도를 외치는 화염병시위대에게 『심판은 표로 하자』고 타이를 수 있는 도덕적 근거도 공명선거에 있다. 투표 하나 올바르게 못하는 국민에겐 민주주의란 「개발에 편자」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 모두 뼈에 새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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