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바뀌며 「신중」으로 선회/「금리자유화」감속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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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여건서 전면시행은 무리”판단/금융사정 악화등 업계의견 반영
정부의 금리자유화 추진속도가 갑자기 늦추어졌다.
정영의 전임재무장관시절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돼 조만간 상당한 폭으로 시행되리라고 예고됐으나 장관이 바뀌면서 달라졌다.
지난달 26일 개각발표 직후부터 금리자유화는 점진적·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해오던 이용만 신임재무장관은 3일 『결코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올해는 우선 시행가능한 것만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본격적인 금리자유화는 내년부터 시행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같은 정책추진속도의 변화는 전·현직장관의 경제관차이와 계속 나빠지고 있는 금융여건,정부안에서의 견해차이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정전장관은 금리자유화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시행해야 될 시급한 과제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장관은 현경제여건아래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운 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최각규 부총리 주재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과열경기에 대한 진정책의 하나로 금리자유화를 시행할 것임을 발표할때만 해도 자유화의 시기가 상당히 앞당겨지고 폭도 클 것으로 점쳐졌다. 금리가 자유화되면 금리가 뛸것이며,자연히 투자가 억제돼 경기진정효과를 거두리란 통화이론에서였다.
전임 장관시절에 일정이 잡혔던 3일의 금융산업발전심의회도 당초에는 정부의 이같은 금리자유화 조기시행방침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장관취임후 분위기는 바뀌었으며,금융산업발전심의회에도 정부의 구체적인 시행방안이 아닌 가능한 여러가지 방안이 상정돼 현 여건에서 급작스런 시행은 곤란하다는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금리자유화의 추진속도조정은 5월에는 금융시장 여건이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있으며 금리가 오르는데다 주식시장이 침체되자 현상황에서 시행에 들어갈 경우 88년 12월 금리자유화조치이후보다 더욱 상황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도 분석된다. 또 이같은 상황에서 업계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으리란 관측이 많다.
이용만 재무장관은 취임후 여러 자리에서 금리자유화가 거론될 때마다 『79년부터 금리자유화를 시작한 일본도 현재 70%정도만 자유화돼있다』는 말을 해왔다. 재무부의 실무관계자 또한 10년이상 걸린 일본처럼 우리 역시 시일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재무부가 하반기중 마련할 금리자유화방안은 그 시행시기와 종류 및 범위에 대해 수년간에 걸쳐 단계적·연차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금리자유화 추진속도가 늦춰질 경우 미국으로부터의 압력이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재무부는 ▲88년 12월 자유화조치때 제도적으로 자유화된 것중 일부가 하반기중 시행될 것이며 ▲현재도 외국은행의 경우는 자유화된 금리범위안에서 자율적으로 운용하고 있고 ▲5월22일 동경에서의 한미금융협의에서도 「하반기중 단계적 자유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금리자유화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3일 금융산업발전심의회에서 위원들은 정부가 내놓은 추진안보다는 지금이 과연 금리자유화를 할 수 있는 시기인가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금리자유화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위원들도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과 이날 회의에서 거론된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금리자유화의 추진방향은 당국이 제시한 여러가지안중 부문별로 단계적·점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이번에 시행될 금리자유화는 88년 12월의 경우처럼 일단 시행했다가 또다시 물러설 수는 없으므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하며 「진짜 추진될 수 있는 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기 때문이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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