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독자방위체계 첫 결실/나토 국방장관회담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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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속대응군 창설에 합의/임무·활동범위등 미와 견해차이
탈냉전이후의 유럽방위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국들간의 이견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회원국 국방장관들이 참가한 나토방위계획위원회가 29일 이틀간 회담을 갖고 폐막됐다.
나토군 통합지휘체계에서 이탈해있는 프랑스를 제외한 15개회원국 장관들이 참가한 이번 회의에서는 신속대응군(RRF)창설에 합의했다.
동유럽주둔 소련군의 철수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해체,독일통일,유럽배치 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체결등 일련의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른 나토의 위상재정립은 그동안 회원국들 사이에 시급한 당면과제로 대두돼 왔다. 이에 따라 작년 7월 나토 16개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40여년간 소련이란 가상적의 공격가능성을 전제로 유지돼온 기존 방위전략의 전면적 재검토를 골자로한 「런던선언」을 발표했다.
런던선언의 구체적 결실 가운데 하나가 신속대응군 창설이다.
신속대응군 창설목적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지중해까지 유럽지역에서 위기발생을 억제하고 위기발생시 신속한 수습을 한다는데 있다.
신속대응군의 조직과 구성은 4개사단 7만명의 병력을 독일에 배치하고,작전지휘권은 영국이 갖도록 하는 것으로 돼있다.
편성은 영국·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터키등 나토내 유럽국을 중심으로한 다국적 편제를 갖추되 이중 2개사단은 분쟁지역에 우선적으로 신속히 투입할 수 있도록 공수부대로 구성된다.
이와 함께 미국은 공격용헬기와 지상공격용전투기,병력수송용 대형수송기등 기동력확보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고도의 기동성을 가진 소수의 다국적 정예부대가 나토산하에 새로 창설되는 셈이다.
그러나 신속대응군의 작전범위가 나토의 기존 방위구역과 동일한 대서양과 유럽으로 한정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신속대응군의 임무를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이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유럽방위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간의 역할 분담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유럽에서 현저히 줄어들긴 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안전변으로서 나토의 존속은 불가피하며,이를 위해서는 걸프전에서도 이미 입증됐듯 미국과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게 미국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반면 유럽국들은 유럽통합이란 다른 각도에서 신속대응군 창설을 바라보고 있다.
유럽이 독자적인 방위체제를 갖춰야한다는 주장은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유럽지도자들은 냉전종식과 유럽통합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지금이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걸프전에서 노출된 유럽의 군사적 무력은 유럽공동의 군사체계 확보필요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나토내 유럽공동체(EC)회원국들은 나토와 EC의 정치동맹,나아가 나토와 서유럽군사기구인 서유럽동맹(WEU)와의 관계설정문제를 들고나와 미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점에서 신속대응군 창설은 유럽의 독자적 방위체계확보를 향한 중요한 일보라는 계산이 유럽국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로 그동안 유럽국들과 마찰을 빚어온 미국은 어디까지나 신속대응군은 나토방위체계의 일부로 창설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그러나 유럽이외의 지역에서도 신속대응군은 유럽의 독자적 방위력으로서 임무수행이 가능하다는 묘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프랑스에 들른 딕 체니 미국방장관은 『나토의 약화에 기반을 둔 유럽안보체제의 건설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미국의 기본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제2의 걸프전과 같은 유럽지역 이외의 위기에 대해서도 신속대응군은 효과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속 대응군의 임무·역할과 관련,미국·유럽간의 시각차는 앞으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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