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무석」시위 해냈다/김양 사망규탄/경찰­시위대 끝까지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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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대∼백병원 만여명 행진/“믿어본다”에 “새 문화”응수/“길막혀 불편”시민짜증은 남아
1만명 가까운 학생·시민들이 28일 오후 4시간30분동안 서울시내 도심 한복판에서 시위·집회를 벌였지만 돌·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대생 김귀정양 사건으로 학생들의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고 시위중 몇차례 충돌할 고비가 있었지만 시위대와 경찰이 끝까지 자제하는 슬기를 보였다.
성대 총학생회·교수협의회·민주동문회등 11개 단체로 구성된 「범성균인대책위」주최로 성대에서 열린 김양사건규탄 및 책임자처벌을 위한 결의대회에 참가한 8천여명이 김양의 빈소가 차려진 백병원까지 가두행진을 하겠다며 교문을 나선 것이 28일 오후 5시20분. 그러나 경찰 6개중대 8백여명이 학교앞에서 가로막는 바람에 충돌이 불가피할 듯 보였다.
이때 협상에 나선 대책위와 경찰관계자는 인도를 이용하되 정치적구호는 자제한다는 조건으로 행진을 허용키로 가까스로 합의했다.
경찰은 『한번 학생들을 믿어보겠다』고 했고,학생들은 『새로운 시위문화를 선보이겠다』고 응수했다.
오후 5시50분쯤 다시 출발한 시위대는 종로4가∼청계천4가를 거쳐 오후7시20분쯤 김양이 숨진 퇴계로 대한극장 맞은편 골목앞에 다다랐고 군중은 어느덧 1만여명에 이르렀다.
경찰도 증강된 병력으로 시위대를 따르고 있었다.
군중들은 이곳에서 8차선도로를 점거하고 20분간 약식추모행사를 가졌고 반정부구호가 반복되면서 다소 흥분하는 모습들이었다.
오후 7시50분쯤 중앙극장앞에 다다른 시위대는 차도를 완전히 점거한채 1시간40분동안 규탄대회를 가졌고 숨진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56)가 『딸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울먹여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고 학생들은 보도블록을 깨뜨려 쌓아놓으며 투석전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경찰도 질세라 다연발 최루탄차량 6대를 전면에 내세우는등 강제해산 채비를 갖춰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한개의 화염병이나 한발의 최루탄이면 순식간에 「전면전」으로 번질 긴박한 대치가 1시간20분이나 계속됐다.
이 시간동안 성대학생회측은 평화시위 약속을 지키기 위한듯 동분서주하며 학생들을 설득했고 학생들이 영안실·집으로 발길을 돌리자 시민들도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해산한뒤 한때 50여명의 시민들이 돌을 던졌지만 한풀꺾인 기세라고 판단한 때문인지 경찰은 끝까지 최루탄을 쏘지않고 참는 모습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시민들은 안도의 표정으로 『화염병·최루탄싸움이 없어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만도 큰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시민들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차도를 점거하고 보도블록을 뜯어내 질서와 공공시설을 파괴한 것이고 경찰은 평화적시위를 담보로 공공질서유지 의무를 방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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