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도표절시비 몸살-오수창씨, 이기돈 교수 박사학위논문 문제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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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사학계의 소장연구자들이 학문연구에서의 가장 비양심적 행위인 표절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 파문이 예상된다.
소장연구자들의 모임인 역사문제연구소와 한국역사연구회가 공동 편집하는 대중적 역사계간지 『역사비평』은 최근 발간된 여름호에 「박사논문 표절시비」라는 기획을 마련, 학계의 표절시비를 처음 공개했다.
이번 호에서 오수창씨(외국어대강사)는 「인조조의 반정공신세력에 관한 연구의 분석」이란 글을 기고, 이기정 교수(홍익대)의 90년 박사학위논문(홍익대 대학원)이 자신의 84년 석사학위논문(서울대 대학원), 후배 한명기씨(경기대강사)의 87년 석사학위논문(서울대 대학원), 이태진 교수(서울대·국사학과)의 인구 등을 인용하면서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표절시비는 학계전반에 걸쳐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 전공학자 일부에만 알려진 채 덮여져왔다.
오씨의 문제제기는 소장연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오씨는 『개인적 감정차원서기고한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오래 전에 알았으며 동료연구자들과 함께 논의한 결과 학계 풍토개선이라는 대의적 차원에서 문제제기가 필요함을 공감해 글을 썼다』며 그간의 경과를 밝히고 있다.
오씨는 기고문에서 『이 교수 박사학위논문의 많은 부분이 다른 연구자의 성과를 때로는 논지중심으로, 때로는 어구까지 동일하게 그대로 반복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연구결과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며 『이교수의 논지와 시각을 하나하나 분석·비판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으나 이 글에서 대강이나마 모순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그것이 부당한 연구자세와 밀접히 결합되어 있음을 밝히려는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오씨는 따라서 「표절」이란 표현을 직접 사용하기 않고 이 교수의 논문을 학술논쟁형식으로 비판하는 방식을 취했기만 끝머리에서 「논문의 숱한 오류와 모순」이 『다른 연구자들의 성과를 함부로 끌어다 씀에서 비롯됐다』고 못박고 있다.
오씨는 글 속에서 이교수의무단 인용사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예컨대 이 교수의 논문 일부가 자신의 석사논문 일부의 문장 중간 중간을 떼어내 연결한 형태임에도 가신의 논문에서 인용했다고 주를 달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무단인용은 방대한 사료를 추적·번역·해석해야하는 국사학 연구과정의 특성을 고려해볼 때 사실상 심각한 표절이라는 것이 소장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편 이 교수는 이에 대해『논문을 쓰면서 기존의 연구과정을 두루 참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씨의 글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구체적으로 얘기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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