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오리탕집 서울 신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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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작년 연말 독감과 기침 때문에 몸이 나른해지고 식욕도 떨어져 새해 정초는 세배도 재대로 다니지 못했다. 계속되는 무력증으로 급기야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체중도 줄어들고 다리에 힘마저 푹 빠진 채 한달이 지나도록 병명에 대한 정확한 설명도 없었다.
달포쯤 지나자 주치의가 집사람까지 병실에서 내보낸 뒤「병세가 여의치 않소, 간경화에 암세포도 퍼진 상태요.」라며 주변정리도 신경을 쓰라면서 말끝을 흐리지 않는가.
「나는 다시 건강인이 될 수 있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굳게 결심하고「먼저 맛있고 영양가 있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자」「술·담배와는 이제 완전히 결별하자」「마음속으로부터 병을 쫓아내자」면서 식구들과 보신탕·오리탕·생선회 등을 거의 매일 먹였다.
퇴원 후 재일 먼저 찾아간 음식점이 신촌역에서 50여m떨어진 영광오리탕집(313-1431)이었다. 5년전 광주에서 올라온 김맹임씨(50)가 서울에 그 유명한 광주고속터미널 건너편의 오리탕을 상륙시킨 것이다.
들깨가루·고춧가루·마늘·된장을 짜지 않고 맵지 않게, 또 냄새나지 않게 적당히 섞은 후 약10분쯤 오리를 통째로 끓인 뒤 손님들 탁상에 올려놓는다.
다시 식탁에서 10분쯤 끓인뒤 토란·미나리를 넣어 먼저 살짝 데쳐 미나리부터 먹고 이어 잘 익은 오리고기를 먹는다. 이 집의 별미는 비단 독특한 오리탕 못지 않게 고들빼기와 잘익은 김치에 있다.
1년쯤 거의 개근하다시피 열심히 먹으면 밥과 민물새우로 만든 전라도 맛의 진수인 토하젓이 나오기도 한다.
오리탕이라고 하면 고혈압·신경통에 좋고 금씨 설명을 들어보면 만법통치요, 정력제일이다. 김씨의 무뚝뚝하면서 원색적인 광주말씨도 특징 중 하나지만 몇년전 고혈압을 앓았던 진의종 전 총리도 이 영광 오리탕집 특효(?)에 건강을 회복했다는 찬사도 있을 정도.
간암이라고 판정받은 나도 6개월이 지난 요즈음 이 오리탕 때문은 아니겠지만 다시 건강을 찾아 이 집을 드나들고 있으니 역시 영광 오리탕집은 맛에서 뿐만 아니고 그 비장의 요리법이 생명력(?)까지 심어 주는 것인지….
감히 이 집을 소개한다. 가격은 오리 한마리분에 2만원인데 3∼4명이 먹을 수 있다.【신경직<해태그룹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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