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가 해야할 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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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의 정원식 총리서리 임명을 보면서 다시금 인물난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40여년만에 몇번의 공화정을 거치는 동안 집권엘리트의 집단퇴장과 등장을 반복해온 나라에서 상처받지 않은 유능한 원로가 쉽게 찾아질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필이면 정씨냐,좀더 시국의 흐름과 국민의 여망에 맞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라는 식의 비판과 추궁은 유보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노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골랐으니 일단 믿고 앞날을 기대해 보자는 낙관적 전망도 쉽사리 할 형편이 못된다.
그만큼 시점이 위중하고 권력핵심의 국면전환 방향을 바라보는 눈들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국민과 야당의 압력을 받아들여 마음이 내키지 않음에도 총리경질을 단행한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과소평가해서도 안되겠지만 뭔가 신선감이 없고 욕심에 덜 차는듯한 국민의 정서도 외면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정씨의 쌓아온 경력이 국민의 민심쇄신 열망에 부응할지에는 여러가지 의문이 있다. 우리가 미심쩍어 하는 것은 그가 문교장관 시절 전교조문제 처리방식에서 강성이었다는 야당이나 재야의 평가에만 귀를 귀울여서가 아니다. 그의 그런 특성은 현재 정부가 처한 상황으로 보아 총리직을 수행함에 있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 대학생의 죽음이 왜 민심이반으로 확대되어 총리가 물러났느냐 하는 점을 새 총리가 회답할 수 있을까이다. 보수·진보 양진영을 모두 짜증나게 한 것은 6공 정부의 무정견한 물가·주택정책과 지역편중인사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물론 정총리의 잠재력과 각오를 예단해 우려부터 앞세우는 것은 온당치 못할지 모른다. 오랜 대학교수·문교장관으로 닦아온 역량이 만개되어 난국극복에 망외의 치적을 올린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제하의 총리직이 안고 있는 한계,집권종반을 향하는 노정권의 동향,국민불만의 핵심에 접근하기 어려운 정총리의 전문성등을 감안할때 자칫 민심수습의 거대한 목표보다는 대통령임기말의 1회용 관리자로 소임이 위축될 우려가 있지 않나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노대통령의 통솔력과 정총리의 역량이 그런 수준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정권말기의 혼란상은 더욱 겉잡을 수 없게 악화될지 모른다.
야당이 정총리의 등장을 호평할 것 같지 않고 대학생·전교조등이 주축이 된 재야의 공세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노재봉총리와 마찬가지로 정총리를 강성으로 몰아붙일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각오가 대통령과 신임총리간에 교감되어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러자면 대통령은 총리에게 과감한 재량권 위임을 해야 하고 총리는 풍전등화에 몸을 던지는 공인정신을 솔선수범,유연성있는 행정기술과 지도력을 발휘해야 될 것이다.
아무튼 이번 내각개편이 국가적 위기관리의 분수령이 되고 민심쇄신의 단초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통령과 총리가 합심해서 국민불만의 줄기를 캐는 노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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