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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천문도가 살아 숨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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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은행이 22일 새로 발행하는 1만원권 화폐에는 우리나라의 장구한 천문학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 지폐의 뒷면 바탕 그림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국보 228호)다. 그 위에는 천체 시계인 혼천의(渾天儀:국보 230호인 '혼천시계'의 일부)와 한국에서 가장 큰 천체망원경인 보현산 천문대 천체망원경이 그려져 있다. 종전의 1만원권 뒷면에 그려진 경회루가 한민족의 천문학 유산과 현대 천문학 장비로 바뀌는 것이다.

소남천문학사연구소는 이를 천문학계의 경사로 보고 19일 서울 홍릉 세종대왕기념관에서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주제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전통 천문도'. 천문학자들이 모여 세계 최고(最古)의 희귀 천문도가 새 화폐에 들어간 일을 자축하고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자리다. 이 연구소는 고 소남(召南) 유경로 전 서울대 사범대 교수의 출연금으로 2005년 9월 설립됐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왕조가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것을 기념해 1395년 검은 돌의 일종인 흑요석에 새긴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형상을 구역별로 나눠 순서대로 배열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1467개의 별과 은하수가 새겨져 있다. 별들의 위치는 고구려 시대인 서기 1세기께로 맞춰져 고구려인이 바라본 하늘의 별들이 그대로 천문도에 투영된 셈이다. 이 그림의 원본이 고구려 천문도라는 사실은 양촌 권근(고려 말 조선 초 대학자, 1352~1409)이 쓴 천상열차분야지도 설명문에도 나와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 평양성에 석각(石刻) 천문도가 있었으나 전쟁으로 잃어버리고 사본만 남아 이를 바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우리나라의 천문도는 중국과 다르며 고인돌 시대부터 자생해 고구려-조선왕조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수천 년간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중국에도 천문도가 있었지만 우리처럼 별자리를 한곳에 모아 기록한 것은 그 이전에 없었다는 것이다.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한 일종의 천체 시계다.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기록상으로는 1433년(세종 15년) 이천과 장영실이 만들었다. 그러나 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1만원권에 그려진 혼천의는 17세기 중엽 송이영이 만든 것(고려대 박물관 소장)으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경북 영천시의 보현산 천체망원경은 지름 1.8m로 수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해발 1162m의 보현산 정상에서 과학자들은 이 망원경으로 선조가 육안으로만 봤던 별자리 너머의, 바닷가 모래알보다 더 많은 별의 변화를 연구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바로잡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표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로 바로잡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는 중국 남송 시대인 1247년에 만들어진 순우천문도이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 제작돼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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