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 민주주의」서 비롯된 부작용”/외국언론이 본 「한국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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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과거부터 쌓였던 한풀기 위한 것/불 르몽드/부패·3당통합에 따른 정치혐오/미 NYT
한국의 5·18시국은 한국의 시위양태에서 앞으로의 광역지방자치선거와 연결돼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이번 대규모 시위는 한국이 아직도 독재정권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인상을 세계에 던져주고 있다고 미국·유럽의 언론들이 논평했다. 특히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는 한국대학생들의 분신은 전통적 사회정치상황과 젊은 학생들이 겪는 의식의 혼란·좌절로 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편집자주>
▲미 뉴욕타임스=전통적으로 광주항쟁 기념일로 끝나는 한국의 「시위의 계절」이 올해는 다를 것으로 보이며 노태우 대통령은 시위를 멈추기 위해 양보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한국의회는 시위에 참여한 대다수의 학생과 근로자들이었으나 일부 사무직원들과 전문직업인들이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주목된다. 이날의 시위는 노대통령 집권이래 가장 대규모적이고 전국적인 것이었다.
거리를 조용히 하기위해 양보하라는 압력이 노대통령에게 점증하고 있는 가운데 3명의 시위자가 또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노대통령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불만과 다음달로 예정된 지방선거 때문에 전통적으로 광주항쟁기념일로 끝났던 시위의 계절이 올해는 양상을 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국의 시위는 ▲노대통의 인권개선약속 후퇴 ▲부패의 만연 ▲부동산값 앙등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기적의 냉각 ▲3당통합으로 인한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서 나온 것이다.
이같은 요인들이 노대통령에게 당장 위협이 되진 않지만 그를 약화시키고 있다.
노대통령이 대외정책에서 수행했던 똑같은 신념을 국내정책에서 수행할 수 있느냐가 다음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미 워싱턴 포스트=최근 한국 시위사태에서 반체제측은 중산층 시민들을 대거 거리로 동원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노태우 대통령의 개혁실천 의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최소한 20여만명이 18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도처에서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여 서울등 전국 주요도시의 기능이 마비됐으며 시위대들은 정부 주요 각료의 사임과 새로운 민주화조치를 요구했다. 만약 이번 시위에 87년처럼 시민들이 동조했다면 이것이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됐을 것이나 반체제그룹은 이점에서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미 LA타임스=최근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시위사태는 이제 시작한,아직 완성되지 못한 한국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전문가들은 오는 93년 차기대통령선거때까지 정치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벌써 23일을 넘긴 시위사태는 해결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장기화되고 있다.
최근의 시위는 지난 87년의 시위와 비교해 기간도 길고 불만요인도 다양화돼 급진적인 반정부인사나 근로자·학생은 물론 대학생·야당·시민들도 민주화 약속불이행·물가앙등 등 여러가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중산층들이 시위에는 가담하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현정권도 크게 지지하지 않고 있다.
▲불 리베라시옹=서구의 시위상식으론 다소 이해하기가 힘든 한국 젊은이들의 잇따른 분신은 전통적 사회정치상황과 젊은 학생들이 겪는 의식의 혼란 및 좌절감이 배경인 것 같다.
최근 한국 젊은이들은 과거 군사독재하에서보다 더 큰 좌절에 싸여 있다.
과거에는 「확실한 적」을 상대로 민중들이 단결했으나 현재는 다수계층이 현상황에 만족하고 있으며 ▲권력의 세련화 ▲야당의 무능 ▲사회주의의 위기와 보수주의의 득세 등의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혼란을 겪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학생들의 급진운동이 점차 고립되는데서 허무주의의 유혹이 점증하는 상황이다.
한편으론 환생을 믿는 불교신앙과 순교로 얼룩졌던 천주교전통이 젊은이들의 분신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불 르몽드=최근의 한국시위는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역사적 환경에서 비롯된 민중사고가 배경이 된 것 같다.
따라서 어떤 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 과거로부터 누적된 「한」을 풀기위한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스위스 주르날드 주네브=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대도시에서 약 한달째 계속되고 있는 격렬한 반정부시위사태는 국제적으로 매우 나쁜 인상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의 최근시위사태중 진정으로 놀라운 점은 시위대들이 지난 60년대와 다름없이 「유혈독재정권」을 규탄하는 구호를 계속 외치고 있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한국은 독재정권에 의해 항상 통치되어 왔다는 인상이 더욱 강하게 부각됐다.
▲영 인디펜던트=한쪽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매표소앞에 줄을 서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은 한국이 안고 있는 「혼돈」과 「질서」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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