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취미가 사격인생 만들었다|한국 클레이 사격의 대부-왕영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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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여름을 재촉하는 햇살이 유난히도 따가웠던 지난 14일 오후의 전라도 나주 종합사격장.
깊은 주름살에 반백의 머리를 한 초로의 신사가 연신 이마의 땀을 씻어내고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며 사격장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왕영선(61·대한사격연맹 자문위원)한국클레이사격의 대부로 통하는 왕씨를 사격인들은 이름대신 「왕대감」이란 애칭으로 더 많이 부른다.
한국 클레이사격의 1세대이자 최고의 지도자로서 그를 거쳐가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여서 「대감」이라는 호칭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날도 서울에서 일부러 나주까지 내려와 경기가 모두 끝날때까지 선수들의 잘잘못을 일일이 지적해주며 실업단대회를 도맡아 진행, 한국 클레이사격계의 그에 대한 의존도가 어떤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그의 명성은 아시아 각국에도 알려져 지난해 구성된 아시아클레이사격연맹 부회장에 선임, 한국사격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클레이사격은 트랩과 스키트로 양분되며 쉽게 설명하면 사냥용 사격이라 할 수 있다.
산탄 (산탄)의 엽총으로 공중에서 움직이는 타깃(접시)을 1∼2발에 명중시켜 깨뜨리는 경기다.
현재 아시아 클레이는 남자부에서 북한이, 여자부에서 중국이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은 남자 트랩 종목을 중심으로 이 두나라를 근접거리에서 맹추격하는 상황.
현 대표팀 코치인 김기원(상무) 김영진(일반)씨가 왕대감의 손을 거쳐갔고 현 대표인 김하연(김포군청) 김건일 박철승 임동기(이상상무) 등도 왕씨 무릎 밑에서 사격에 눈을 뜬 선수들이다.
왕씨가 사격을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이던 60년대 초.
당시 건축사업 등으로 재미를 본 왕씨는 틈틈이 사냥을 다니며 익힌 총 솜씨를 바탕으로 국내대회에 출전, 각종대회를 휩쓸면서 뒤늦게 자질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사냥총과 클레이사격은 다소 거리가 있지요. 처음에는 사냥하는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으나 잘 맞히질 못했어요. 그렇다고 클레이 코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일본서적 등 관련사격문헌을 모조리 읽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실전훈련을 해보고…. 그러다 보니 안목이 트이더라구요.』
75년∼82년 최장수 대표팀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던 왕씨는 사냥에 미쳤던 당시를 다소 회상조로 들려준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사냥의 황금기였지요. 사냥에 대한 규제가 없었던데다 총기의 개인소지가 가능해 한번 출렵하면 하루에 꿩10여마리 잡는 것은 우스웠지요. 총 한발이면 정확히 1마리씩 떨어지지요』
지금도 사냥시즌이 되면 수많은 포수들이 클레이 사격장을 찾아 미리 연습하고 떠난다.
왕씨는 『그러나 경기대처럼 그대로 조류를 향해 쏘면 살점이 모두 없어져 먹을 것이 없어진다』면서, 한마디 조언한다. 『경기할때는 접시(타깃) 가 공중으로 뜬 뒤 18m이내에서 쏘는게 정석이나 사냥에서는 새가 공중으로 날은 뒤 20∼30M정도 거리에서 사격해야 한다』 는 것.
지난3월 사격연맹집행부 개편 후 클레이 분과위원장직을 물러난 뒤 하루도 빠짐없이 사격장에 나가 후배들을 돌봐주고 있는 왕씨는 일선에서 물러난데 대한 아쉬움도 남는 것 같다.
『집행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죽는 날까지 영원한 사격인이지요. 다행히 신임 장진호 (장진호·진로그룹회장) 회장이 취임한 후로는 사격인들간의 불화도 많이 가라앉은 것 같고, 또 장 회장이 의욕적으로 사격활성화에 힘쓰고있어 음지에서라도 돕고싶은 마음뿐입니다.
전 국가대표남매빙상스타였던 수창(미국유학중) 성혜(전 테니스국가대표 유진선 부인)씨 등의 아버지이기도 한 왕씨는 남은 인생도 「클레이」와 함께 보낼 생각이란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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