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집회 강군 노제/동시행사로 대규모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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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책회의,「18일장례」 어떻게 정했나/「광주」 맞물려 군중동원 자신/여론의식 더 미루지도 못해
노제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어온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18일로 확정됨에 따라 20여일이나 끌어온 「시위시국」이 5·18광주항쟁과 맞물려 그 고비를 맞게됐다.
전국이 「5·18비상」으로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투쟁이라는 일부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대책회의가 이날을 강군 장례일로 잡은 것을 두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책회의측은 장례날짜를 18일로 잡은 것은 『가급적 빨리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유족의 뜻과 16일 윤용하씨 장례,17일 광주항쟁기념 전야제 등 시간적인 문제에 따른 우연한 일치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수호 대책회의집행위원장도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 아니냐는 여론을 의식한듯 『당초 17일로 정했으나 광주 현지행사등으로 강군의 추모행사가 사실상 어렵다는 광주쪽 요청에 따라 하루 연기된 것 뿐』이라며 극구 부인했다.
대책회의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강군장례가 5·18행사에 불을 붙이느냐 또는 희석시키느냐는 내부 격론이 있었다』며 『광주항쟁 11주기행사와 맞물리는 것이 인력동원과 투쟁효과에 긍정적이라는 의견으로 기울어지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5·18이후 대정부 공세를 펼 이렇다 할 호재가 없는 상태에서 대책회의는 5·18투쟁의 열기를 어떻게 6월 시국으로 이어가느냐는 고민속에 빠졌고 그 열기를 증폭시킬 도화선으로 18일 장례를 택하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대책회의가 18일 장례를 결정하게 된 데에는 이런 내부 전략적인 측면이외에도 현실적인 고충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력동원이 가장 큰 문제였다.
14일 연세대로 「회군」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신촌로터리에 모인 10만 군중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빨리 식어버린 열기와 5·18대회를 치러야 하는 부담속에 17일 장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책회의의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18일은 무작정 연기시키는 것도 장례중단후 「시신이 길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을 불식할 수 없는데다 인력동원은 물론 「5·18」 군중집회까지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
게다가 인력과 자금동원력에서 대책회의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대협과 전노협이 「5·18」 집중공세를 주장,별도의 장례에 난색을 표명해 이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강군 사망이후 연일 계속되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국민적 감정을 고려할 때 17,18일 연이틀 행사를 치르는 것은 오히려 효과의 반감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대책회의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강군의 장례가 대책회의의 개편·활동방향과 맞물려 있는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대책회의는 14일 장례를 마치고 18일 제2차 국민대회를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개최,「5·18」 투쟁열기를 확산시킨뒤 대책회의를 「공안통치종식과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라는 정치단체로 발전적 해체를 꾀했으나 장례연기로 일단 보류된 상태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갑작스런 장례의 변경으로 조직개편등 투쟁일정에 차질을 빚게된 것은 사실』이라며 『명분과 여론에 밀리고 있는 상태에서 18일 장례와 5·18관련 대회를 한꺼번에 치러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14일의 강군 장례 당시 신촌로터리에 모인 군중수나 열기로 보아 대책회의 관계자들은 6공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결코 87년 6월항쟁 당시보다 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앞으로의 투쟁을 낙관하고 있는 실정.
이 때문에 장례식이 끝나면 모든 사회단체를 조직적으로 결집해가며 한단계 높은 대정부투쟁을 벌인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수호 집행위원장은 강군사건으로 대정부투쟁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면서도 대책회의의 성패는 결국 국민들의 지지와 참여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장례와 진상조사단의 활동결과가 변수로 남아 있지만 장례식이 끝나면 6월초까지 대부분의 재야단체들이 자체 조직점검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강군사태로 촉발된 긴장감은 18일을 고비로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고대훈·이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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