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이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에게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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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첫 내한 공연을 한 '우리 시대의 거장' 에릭 클랩턴(61.사진(左)).

1만8000여 관객 앞에서 신들린 연주를 보여 준 그는 당시 공연을 끝내고 호텔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관계자들을 긴장케 했다. 영어가 통하는 운전사 한 명만 데리고 나갔다는 사실을 안 관계자들은 수소문 끝에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쭈그려 앉아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의 손에는 압구정동.이태원 등의 노점상에서 구입한 양말.티셔츠 등이 담긴 비닐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관계자가 조심스럽게 "왜 여기 계시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냥 이 도시를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전설' '기타의 신'으로 통하는 그가 무대 밖에서 보여준 이 같은 인간적이고 소탈한 성품은 그의 음악과도 맥이 닿아 있다.

Q: 10년 만의 한국 공연, 어떤 선율 선보일지 …
A: 내 음악 총망라하는 연주 기대하세요
23일 내한 공연

그런 그가 2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두 번째 내한 공연을 한다. 그를 가수 이승철(40)이 만났다. e-메일 인터뷰를 통해서다. 에릭 클랩턴 같은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그는 같은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우상'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당신은 오직 음악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 같다.

"오직 음악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인간으로서 많은 갈등과 고민.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나에게 음악은 위안이자 기쁨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굳이 집중하거나 결심하거나 할 일이 뭐가 있는가."

-당신의 음악이 신세대와 구세대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랑받고 있다니 감사하다. 내 음악의 뿌리는 블루스다. 가끔 어쿠스틱 또는 언플러그드를 연주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도 내 음악의 뿌리는 블루스에 두고 있다. 귀 기울여 들어 보면 1970년대 내 음악이나 지금 음악이나 음악적 뿌리는 변하지 않았음을 느낄 것이다. 블루스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명력 있는 음악이다. 내 음악이 넓은 계층에서 사랑받는 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 고전인 블루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과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등이 한창 활동했던 60, 70년대는 록의 황금기였다. 그런데 요즘은 록이 예전같지 않다.

"지금처럼 상업적인 음악이 주류 음악으로 넘쳐나는 시대는 없었다. 요즘 록 음악계가 70년대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도 많은 발군의 아티스트가 록 음악계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시장이 그들을 오래 지켜보는 인내심이 없을 뿐이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더 낭만적이었고, 음악을 만들고 즐기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했었다."

-상업성과 음악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하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음악을 만들 때 나를 먼저 생각한다. 내가 만족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음악을 팬이 좋아해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당신의 음악이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만의 언어를 가진 음악을 한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다행스럽게 나는 어린 나이에 나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음색을 찾았다."

-당신은 평생을 기타와 함께했다. 기타의 매력은 무엇인가.

"연주할 때의 감정과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악기다. 같은 곡이라도 어제 연주와 오늘 연주의 느낌이 다르다. 항상 그대로인 것 같지만, 항상 다른 무언가가 있다."

-아시안 뮤지션들이 서양 음악을 하는 걸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음악은 만국 공통어다. 인종이나 피부색을 가려서 보지 않는다. 내 음악의 뿌리도 아프리카 아닌가.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자극과 조류가 탄생한다. 난 많은 아시아인이 서양의 고전음악을, 많은 라틴 사람이 정통적인 블루스 음악을 하는 것을 보았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음악 하는 시간 외에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새로 꾸린 가족이 내게 큰 기쁨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들어 왔던 블루스곡들을 여전히 즐겨 듣는다."

-이번이 두 번째 내한공연인데 공연 외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10년 전에는 날씨가 좋아서 시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아마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 같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쇼핑했던 것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를 알려줄 수 있는가.

"내 음악을 총망라하는 공연을 할 예정이다. 월드 투어를 떠나기 전 프랑스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 달간 리허설을 했기 때문에 그때 준비한 많은 곡이 한국 팬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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