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운물 '콸콸' 수출길 '탄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2004년 경동나비엔(당시 경동보일러)은 전국의 가스보일러 이용고객 1000명을 상대로 시장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보일러의 온수(溫水)시스템에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뜨거운 물을 제때 충분히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경동나비엔의 에너지기술연구원 90여명은 온수가 끊기지 않고 나오는 보일러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기위해선 생산과정을 확 뜯어 고쳐야 했다.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동(銅)으로 만들던 콘덴싱보일러의 열교환기를 내구성이 강한 스테인리스로 바꿨다. 그러나 스테인리스는 동에 비해 용접이 힘들었다. 6개월 궁리끝에 용접기술을 고안했다.

이런 산고를 거쳐 지난해 11월 선을 보인 보일러가 '나비엔 뉴콘덴싱 On水'다. 열효율을 98.5%(총발열량 기준)까지 끌어올렸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걸리던 시간을 30초 이상에서 10초 이내로 줄였다. 온수 온도는 섭씨 0.5도씩 조절토록 했다.

경동은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새 보일러 를 개발했다. 국내 시장은 2003년이후 아파트 건설이 주춤해지면서 정체됐고 사세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다. 업체간 출혈경쟁이 이어져 매출과 이익이 줄었다.

김철병(사진) 사장은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수 있는 보일러를 개발한 만큼 중국과 동유럽 등 개발도상국에 치우쳐 있던 수출 시장을 미국과 서유럽 시장으로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동은 오래전부터 해외시장을 두드렸다. 92년 중국과 수교가 이뤄지자 그해 바로 중국 옌벤에 수출을 시도했고 93년엔 베이징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그러나 라디에이터를 이용한 중앙난방이나 지역난방 중심인 중국에 온돌 기반의 가정용 보일러를 팔기가 쉽지 않았다. 첫해 7만5000달러 어치를 팔았지만 옌벤의 추운 날씨 탓에 곧 탈이 났다. 가정용 LPG 가스가 제대로 기화되지 않아 보일러가 금새 꺼져버렸다. 미국 시장에서도 홍역을 치렀다. 미국 동부에 1000여대의 기름 보일러를 팔았지만 곧 소비자의 항의가 빗발쳤다. 등유와 경유에 적합한 보일러였지만 현지에선 점성이 높은 벙커A유를 연료용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일러를 가동하면 곧 끄으름만 나올 뿐 난방이 되지 않았다. 판매를 즉시 중단한 경동의 기술진들은 6개월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고쳐줘야 했다.

이때 들어간 돈만 30만 달러가 넘었다. 김 사장은 "보일러를 팔려면 문화를 함께 팔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수업료를 톡톡히 낸 셈"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경동의 해외시장 공략방법은 많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보육원과 노인보호시설 등에 온돌바닥과 보일러를 무료로 시공해주고 주민들과 공무원들을 초청해 온돌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류호진 마케팅팀장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면서 중국의 가스보일러 시장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시장에도 공을 들인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여는 패션쇼를 후원하고 카다로그에 온돌문화를 홍보하는 광고를 실었고 미국 여러도시를 순회하며 보일러 기술자들을 상대로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경동은 지난해 미국에 판매법인을 설립했고 이달 말 미국 댈러스에서 열리는 국제 냉난방.공조기기 전시회 '2007 AHR'에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경동은 현재 전체 매출의 15% 수준인 수출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 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내수시장을 겨냥해 홈네트워크와 에어콘, 환기시스템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작정이다.

◆ 경동나비엔은=1978년 석탄 채굴업체인 경동탄광㈜이 출자해 만든 경동기계라는 연탄 보일러 제조업체로 출발했다. 80년대 기름, 90년대 도시가스로 주요 가정용 연료가 바뀌자 경동은 88년 국내 최초로 콘덴싱가스보일러를 개발해 성장가도를 달렸다. 유럽에선 이미 대중화된 콘덴싱방식은 한 번 태우고 난 배기가스의 숨은 열을 흡수해 열효율을 높이는 앞선 기술이었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매출이 20% 이상 떨어졌지만 이때 내놓은 중저가 보일러가 히트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경동나비엔이란 사명중 나비엔은 내비이게터(Navigator).에너지(Energy).인바이런먼트(Environment)의 합성어다. 즉 난방전문기업에서 탈피해 에너지와 환경 사업분야의 길잡이 업체로 변신하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담고 있다.

글=임장혁,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