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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9년 만에 새 앨범 '핸드 메이드' 낸 이정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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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타 현을 울리며 '섬소년'이나 '산사람'등의 맑은 노래를 불렀을 때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지 모른다. 가수 이정선(53)이 우리에게는 친근한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일상에 매인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저만치 떨어져 '산이 좋다'며 웃는 노래꾼이었다. 데뷔 30주년을 맞아 11집 앨범 '핸드 메이드(Hand Made)'를 들고 그가 돌아왔다. 10집 앨범 '언플러그드'를 낸 뒤 9년 만의 컴백. 그를 만났다. 노래만큼이나 친근하지만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간 그는 갈수록 사람 냄새가 나는 '손맛'에 이끌린다고 털어놨다.

-5월에 이미 완성된 음반을 지금 발표하는 이유는.

"내 음반과 후배들의 헌정음반이 비슷한 시기에 추진되다가 헌정음반 발매가 늦어지면서 완성된 내 음반도 발이 묶였다. 홍보도, 다른 그 무엇도 좋지만 음반을 만든 사람 입장에서 6개월을 기다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9년 만에 음반 작업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계속 음악을 해왔지만 정작 앨범을 내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 음악(댄스음악)만 나오는 분위기에 끼여 경쟁하기 싫기도 했고…. 혹은 게을러서 앨범을 미뤘을 수도 있다. 그러다 후배들한테 쓴소리를 들었다. "우리 음악이 다양해져야 한다.열심히 하라"고 하니까 "마흔 넘어 손놓은 선배를 보고 우리가 뭘 배우겠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용기를 냈다. 후배 핑계 대고 한 것 아니냐고? (웃음) 그런 점도 없지 않다."

-음악적으로 시도한 변화가 있다면.

"최대한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고 싶었다. 녹음할 때 메트로놈도 껐다. 디지털 기기도 녹음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만 썼다. 노래도 일부러 잘 부르려 하지 않았고…. 이런 저런 기계 쓰는 것도 다 꾸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었다. 얼핏 들으면 모두 다 어설프게 들릴 수 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 것 같다고? (하하) 실제로는 훨씬 더 잘한다. 하지만 다시 들어보라. 매끈하게 들리기보다 욕심없이 어울리는 기타 연주도, 브러시로 낸 드럼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꾸 들으면 편해질 텐데…."

-다듬어진 소리만 듣던 이들에게는 귀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기 단풍이 보인다. 매일 지나치다 가도 어느 날 갑자기 보니까 나뭇잎이 아름답게 물든 것을 발견한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자꾸 들어 '이게 사람의 소리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도 음반 판매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어차피 그리 잘 안 팔릴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해줄 사람들이 나오리라 믿는다. 이런 저런 고집을 부리다보니 제작자와 줄곧 다퉜다. 게다가 재킷 사진을 찍었더니 "형, 얼굴이 늙어 보여. 사진 다시 찍자"고 하더라. 나이든 게 무슨 죄인가? 내가 내 나이처럼 보이면 왜 안 되는 거지?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이 잘 이해가 안 된다."

-학교(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서 6년동안 강의를 하고 있는데.

"'조직'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은 참 재미있다. 누구나 어느 나이가 되면 내가 가진 것, 내가 아는 것 다 주고 싶고 다 가르쳐주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의 음반에서는 역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주는 매력이 가장 크게 꼽힌다. 30년의 '공력'이 은은히 울려퍼지는 이 연주에는 20년 넘게 그와 호흡을 맞춰온 기타리스트 장재환이 손을 보탰다. '살다보면 언젠가는''상실' '항구의 밤'등의 가사에 비친 세상은 초기 곡에 비해 일상에 가까워졌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분위기는 더 스산하다. 하모니카 연주곡 '생각이 많아도 말은 못하고', 가야금 산조와 12현 기타의 만남을 시도한 곡도 귀기울여 들어볼 만하다.

이은주 기자<jule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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