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PU-뚜렷한 거리감…"참가에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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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평양에서 열렸던 국제 의회 연맹 (IPU) 총회에 참석차 지난달 27일 북한에 들어갔던 우리 국회 대표단 일행이 5일 돌아왔다.
이번 국회 대표단의 방북은 분단 후 처음 이루어진 것으로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뿐더러 각급 남북 대화 재개 문제에도 「진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우리측 중진급 의원들이 북한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측 고위관계자들과 서로 하고싶은 얘기를 나누었다는 점은 남북 관계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 대표단의 북한 체류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태도를 들여다보면 남북 관계 개선이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 확인됐다고도 분석된다.
우선 수정 통일 방안의 제시문제다.
북한은 금년 초부터 동구 주재 대사·정준기 부총리 등을 통해 「외교·군사권을 남북 지역 정부가 갖도록 한다」는 수정 통일 방안을 흘려와 이번 IPU총회 때 이를 공식화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돌았다.
그러나 북한은 김 주석의 개막 연설을 통해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라는 기존의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 창립 방안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윤기복 최고 인민회의 통일 정책 심의 위원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지역 자체 정부에 더 많은 권한, 즉 외교권·군사 통치권·내정권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같이 김 주석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윤기복 위원장은 수정 통일 방안을 기자 회견을 통해 밝히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는 데에는 북한 나름대로 의도가 들어있다고 분석된다.
우선 기자 회견을 통해 수정 통일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수정 통일 방안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면서 남한 정부의 반응을 떠보겠다는 의도도 내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특히 수정 통일 방안을 유엔 가입 문제에도 연결시킨다는 계산도 하고있는 듯하다.
즉 외교권을 지역 정부에 넘긴다는 것은 유엔 가입 문제와 연계가 되기 때문에 남한 정부에 수정 통일 방안에 대한 협상을 하자고 제의하면서 남한 정부의 유엔 가입에 제동을 걸어보자는 의도가 내포돼 있을 수 있다.
북한은 김 주석의 연설을 통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우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뉴질랜드 대표들이 촉구한 핵사찰 수락에는 일체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는 다른 국가들의 핵사찰 요구를 역으로 대일·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이와 함께 팀 스피리트 훈련 중지·방북 인사 석방·국가 보안법 폐지 등 그들의 「고정 메뉴」를 역설했다.
게다가 우리측 대표단이 북한에 체류 중인데도 언론 매체를 통해 원색적인 대남 비방을 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국회 대표단의 방북은 남북 관계에 획기적인 사건이기는 하나 어느 면에서는 「남북간의 거리」를 확인해준 측면도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편 북한으로서는 이번 총회에서 군축 결의안 채택에 실패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으나 국제 사회에서 입지를 높였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입장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북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점에서 대북 정책 결정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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