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확대재생산 피하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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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강경대군의 불행한 죽음이 일파만파의 충격과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사회 전체를 다시금 혼란과 혼돈의 과중으로 몰고 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혼란과 혼돈의 조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정부·정치권·학생운동권에 대해 냉정한 가슴으로 사후처리를 매듭지어야 함을 먼저 당부한다.
가슴아픈 강군의 참사가 이땅에서 다시는 재발되지 않기 위하여,또 한 대학생의 불행한 죽음이 사회와 국가 전체의 불행으로 파급되지 않기 위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강군 참사의 1차적 요인이 경찰의 공격적 진압방식에 있었다면,그런 명령을 하달한 정부내의 공안적 통치분위기가 이번 참사의 2차적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특히 정부속의 공안통치적 강경분위기가 여러 분야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강군 참사가 일어났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전경 몇명의 우발적 감정 폭행사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정부의 시위진압형태가 강경으로 바뀌게 된데는 6공초기의 우유부단한 대처방식이 치안부재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여론에 밀린 탓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임기말 통치권 누수현상을 막기 위한 법질서의 확립차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가능하다.
○「공안」 분위기 씻어야
그러나 어떤 견해,어떤 입장에서라도 법질서의 확립이 곧 공안통치 또는 권위주의 정치에로의 회귀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의 혼란과 혼돈의 파급을 원초적으로 막기 위해선 정부가 앞장서 공안통치적 분위기를 청산하려는 가시적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언론·방송·노조·운동권 등에 대한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압력행사나 마구잡이 구속,또는 구속된 피의자에 대한 인권유린과 고문의 징후 등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회 일각의 지탄을 불식시킬 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강한 정부란 권력의 폭력화나 공안통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님을 강군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다음,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혼란과 혼돈으로 몰고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데 우리는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야당이 강군 참사사건 이후에 보이고 있는 정치공세방식이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당리당략 차원임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학생의 불행한 참사를 빌미삼아 정치적 이득이나 고지를 확보하려는 쪽으로 시도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불행을 확대재생산할 뿐이라는 게 국민적 인식일 것이다.
이미 정부·여당이 공안통치적 분위기를 보였다면 그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일찌감치 야당에서 일어났어야 했고,그러한 분위기를 제압하거나 여론화시킬 책임은 마땅히 야당의 몫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불행한 죽음이 일어난후 이를 빌미로 여론의 향방에 눈치보며 투쟁방식을 저울질한다면 결코 여론은 그들의 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야당 또한 이런 참사의 재발을 방지할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정부내의 공안적 분위기를 일소하기 위해 국회활동을 통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혼란과 혼돈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혼돈과 혼란을 축소하고 불행한 참사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제시하는 쪽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한다.
○폭력의 악순환 끊자
끝으로,재야·운동권에 대해 간곡히 제안코자 한다. 오늘의 상황은 결코 6월항쟁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는 현실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6월항쟁은 5공의 폭압적 권위주의에 대한 정의로운 항거였지만,이번 사태는 과격시위가 몰고온 과잉진압의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여론에 수긍해야 할 것이다.
등록금 동결투쟁이라는 학내문제가 이번 불행을 계기로 국기를 흔드는 혼란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27일,강군 사망을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연세대 집회에서 대학생들이 각목과 화염병을 들지 않고 경찰의 물대포와 최루탄에 묵묵히 맞섰다는 사실은 경찰에게 반성의 계기가 되어야 될 것이다.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낳는 폭력의 상승작용을 막는 것이 참다운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의 혼란과 혼돈을 우려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또 다른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는 강군 아버지 강민조씨의 간절한 호소 또한 폭력이 폭력을 유발하는 사태가 없기를 비는 간절한 호소라고 본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죽음이 없도록 모두가 냉정한 가슴을 회복하고 대처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최선의 노력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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