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부인이 해야할 일/홍은희 생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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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부인 김옥숙 여사가 여성단체들의 공식행사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취임 3년여가 지나도록 「그림자 내조」만을 고집해온 김여사가 불문율을 깨고 건전생활실천 범여성운동연합 주최로 25일 오후 한국여성개발원 대강당에서 열린 「깨끗한 물지키기 실천대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사실 그간 김여사의 그림자식 내조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불만도 없지는 않았다. 대통령부인은 어떤 의미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성격이 있고 그의 활동은 국민다수에게 영향을 주게 되므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여성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을 파악하고 해결하는데 촉매여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철저히 이를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서 나오는 불만이었다.
제5공화국시절 말많고 탈많았던 대통령부인의 행적을 생각하면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평범한 주부와 달라 나름의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
미국 시에나대학 토머스 캘리 교수팀들이 미국의 역대 퍼스트 레이디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국가에 대한 기여도 ▲지도력 ▲성취력 등을 ▲여성다움 ▲공공에 대한 이미지 ▲지적수준 ▲대통령에 대한 가치와 함께 꼽았다는 것을 상기할때 그간 김여사의 활동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김여사의 이번 사진전 관람도 평소 그가 지니고 있던 환경문제·탁아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한 것일뿐 공식활동의 개시는 아니라고 측근들은 잘라 말한다.
행사가 끝난 시각에 맞춰 행사장을 찾은 것이라든가,4백50여명의 참석자 가운데 약 50명의 단체장들만을 초대하여 담화를 나눈 것을 볼때 「그림자 내조」의 방향은 바꾸어지지 않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왕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성취력을 갖는 것이 어떨까. 주부들의 「물에 대한 걱정」을 직접 들어보기도 하고 청와대에서 솔선수범하고 있는 깨끗한 물지키기 사례들을 들려주며 격의없는 한자리를 가져보았다면 더욱 고무적이 아니었을까.
『환경문제와 타락선거에 관한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는 김여사의 지적을 4백50명의 참석자가 모두 들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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