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4년제 대졸자 적정 임금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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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해 첫날부터 주요 취업 포털에 7000여 통의 이력서가 올라왔다는 기사(본지 1월 3일자 3면)에 중소 제조업체 사장 네 명이 전화를 걸어 왔다. 모두 기사 첫 머리에 소개된 구직자 남모(31)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지방대 토목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취직이 힘들어 희망 연봉을 1800만원으로 낮췄다는 사연에 채용을 전제로 면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남씨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자 기뻐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는데…."

e-메일도 몇 통 받았다. 한 중소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진실한 기사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내용을 보내왔다. 대구에 있는 중소기업에 근무한다는 그는 "날마다 신문에선 대기업 대졸 초임이 3000만원이니 4000만원이니 하며 강남 아파트처럼 호가만 잔뜩 올려놓았다"고 언론을 탓하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본지 보도에 대한 댓글을 검색해 보니 1000명이 넘는 네티즌이 적정 연봉에 대한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밝히며 어려운 현실에 공감을 표하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대졸자의 희망 연봉이 턱도 없이 낮다는 네티즌도 있었다.

논란의 핵심은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적정 임금은 얼마인가'다. 답이 없는 설전이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구직자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문제는 각양각색인 대졸자들의 눈이 똑같은 수준으로 높아져 있다는 것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하반기 업종별 매출 10대 그룹 110곳을 조사해 발표한 대졸 초임 평균은 3023만원이었다. 잡코리아는 최근 매출 500대 기업을 조사해 올해 대졸 초임 연봉이 2985만원 정도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조사와 보도가 이어지니 4년제 대학을 졸업하면 3000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모두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조사 대상 회사는 10인 이상 사업체(22만6699곳) 기준으로 대한민국 상위 0.04%(인크루트), 0.2%(잡코리아)에 해당하는 '수퍼 직장'이다. 극소수의 현실을 바탕으로 전체 구직자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크루트가 회원 정보 49만 건을 바탕으로 작성한 4년제 대졸 평균 초임은 1886만원에 불과하다.

분명한 것은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는 생긴다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러브콜을 받게 된 남씨처럼 말이다.

올 취업시장은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틈이 보이지 않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려면 자신의 몸값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