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라디오·TV·세탁기 … '국내 최초' 만들며 60년간 앞서 뛴 L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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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이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947년 부산에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워 국산 화장품 '럭키 크림'을 생산한 게 그룹의 시초였다. 환갑을 넘기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도 흔치 않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선정하는 미국 내 500대 기업도 평균 40년 정도면 문을 닫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 60년을 이어가며 화장품 회사에서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LG로서 자축할 일이다. 그러나 LG는 잔치를 벌이기보다 신발끈을 다시 동여매는 분위기다.

◆ 잔치는 없다. 신발끈을 고쳐 매자=LG그룹은 60주년 창립기념일인 올 3월 27일에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2일의 시무식에서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겸했다. 떡이나 케이크는 없었다. 60주년을 돌아보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구본무 회장이 인사말에서 "올해는 LG의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한 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고 한 것 정도가 환갑을 자축하는 내용의 전부였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지속적인 성장'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우리만의 전략은 무엇이며, 이를 위한 역량 확보 방안은 구체적으로 준비돼 있는가. 창립 60주년을 맞는 새 아침에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할 엄숙한 질문이다." 구 회장은 또 "우리는 지난 60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했다. 지난해 주력사인 LG전자의 영업 이익이 전년(9000억원)의 절반 정도에 머물 전망이고, LG필립스LCD는 약 1조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등 그룹 실적이 가라앉자 구 회장이 60주년을 기화로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구 회장은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존중 경영의 참 뜻"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LG가 내세우는 '인화'를 '잘못을 눈감아 주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데 경종을 울린 발언이라는 게 그룹 내부의 해석이다.

◆ 60년 동안 26만 배 성장=47년 3억원이었던 LG의 매출은 지난해 80조원이 됐다. 화폐 가치를 따지지 않고 보면 26만 배 성장이다. 1962년 미국에 라디오 62대(4000달러어치)를 판 게 전부였던 수출 실적은 지난해 400억 달러로 1000만배 늘었다.

LG그룹은 54년 최초의 국산 치약 개발, 57년 민간기업 최초 대졸 신입사원 공채, 라디오.TV.세탁기 국산화 등 갖가지 '국내 최초' 기록도 세웠다. 2003년엔 ㈜LG를 만들어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한 대기업 1호가 됐다. 일부 대기업이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에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현실에서 구씨.허씨 두 창업 가문의 화목한 동업은 세간의 화제였다. 2003년 구자경 LG명예회장의 사촌인 구자홍 회장의 LS그룹이, 2005년엔 허씨 집안의 GS그룹이 계열 분리했다. 지난해 말 허창수 GS 회장 장녀의 결혼식 때 구자경 명예회장을 비롯한 '범(汎) LG가' 인사들이 모두 모이는 등 '아름다운 이별' 이후에도 우애를 이어가고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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