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학자 한국사 연구 "새 지평"|역사학회 87∼89년 연구성과 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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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80년대 말 이후 한국사 연구가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면서 질적으로도 상당한 수준 향상을 가져왔다는 학계의 자체 평가가 나왔다.
역사학계의 가장 대표적 기성 학회인 역사학회는 최근 출간한『역사학보』1백28집에서 87년부터 89년까지의 한국사 연구성과를 이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역사학보』는 특히 연구성과의 양·질적 발전이 80년대 후반이후 급증한 소장 연구자들의 진보적 연구성과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평가해 주목된다. 이는 그동안 진보적 연구 성과를 의식적으로 외면하거나 부정해 온 기성학회에서 소장 연구자들의 공로를 상당부분 인정해 주는 시각전환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학보』는 총설과 시대별로 나누어 중견 교수들의 평가를 실었다.
시대별 필자는 ▲총설 이재농(숭실대) ▲고고학 최몽룡(서울대)▲고대 김두진(국민대) ▲고려 김용선(전북대) ▲조선전기 김항수(동덕여대) ▲후기 최완기(서울시립대) ▲최근세 김도형(계명대) ▲식민시대 윤경노(한성대)교수 등이다.
이재농 교수는 총설에서『87∼89년 3년간 저서·편저 3백여 권, 논문 2천5백여 편이 발표됐는데, 이는 84∼86년 3년간 1백여 권, 1천여 편의 2배 이상』이라며『이는 연구원이 증자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지난 3년간 학계의 가장 특징을 소장연구자들의 학회중심 활동과 북한의 한국사 연구 소개로 정리했다. 이 교수는『소장 층을 중심으로 학회가 창립되어 연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특히 근·현대사 연구에서 새로운 경향을 지향하는 이른바 민중사학이 시대연구를 주도해 가는 느낌』이라며 『사회주의운동과 해방이후 사까지 연구한 것은 기성학회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북한역사 서적 보급과 관련,『북한의 한국사 인식을 바로 터득하고 한국사연구가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대별 평가에서도 양·질적 발전이 상당한 것으로 확인된다.
고고학분야를 맡은 최몽룡 교수는『발굴조사 규모가 커졌으며, 특히 중국·소련 등으로의 여행자유화로 민족기원에 대한 연구시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발전은 식민지 시대, 특히 30년대 사회주의 항일운동연구로 지적됐다. 평가를 맡은 윤경노 교수는『그동안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 방치, 폄 하 돼 온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민족주의」운동에 국한해 온 기왕의 경향을 극복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같은 발전에도 불구, 학자 상호간의 연구비평부재·실증적 연구부족 등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
김용선 교수는 서평·논문비평의 부재와 관련, 『개별 논문에 대한 전문적 논평을 찾아보기 힘들다』며『이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강조할 뿐, 타인의 주장을 진지하게 수용하거나 설득력 있게 반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라며 반성을 촉구했다. <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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