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원짜리 컴퓨터 팔고 합의금 7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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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프로그램 사용을 제안받은 뒤 저작권법 위반 소송에 휘말려 유명 법무법인에 거액을 뜯겼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있다고 3일 노컷뉴스가 보도했다.그러나 이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 수색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간 입장차이로 실체적 진실 규명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서울의 컴퓨터 판매상 송모(39)씨는 지난 2002년 말 특정 소프트웨어가 설치돼 있지 않으면 컴퓨터를 사지 않겠다는 한 손님의 말에 프로그램을 불법 복제해 판매했다.

그런데 한 달 뒤 소프트웨어 회사측의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에서 발송한 최고장이 날아들었다. 합의금 10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저작권 위반 소송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송씨는 "20일 동안 버티다가 사무장 명의 계좌로 300만원을 주고 결국 합의 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모(36)씨도 비슷한 때에 90만 원 짜리 컴퓨터 한대를 팔고 역시 같은 법무법인측의 종용으로 700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일반적인 소송 절차를 밟았다면 몇 십 만원의 벌금만 내면 될 사안이었다.

이씨는 "어떤 사람은 합의하지 않고 버텼다 벌금 20만원만 내고 끝냈다"며 "90만원짜리 컴퓨터 한대를 팔고 700만원 벌금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특히 "당시 300개가 넘는 업체가 단속됐다는 말을 법무법인측으로부터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사건을 법조 브로커가 개입된 공갈및 횡령 사건으로 보고 지난해 12월 문제의 법무법인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법무법인측이 소송을 지렛대삼아 컴퓨터 판매상인들로부터 과도한 합의금을 받은데 이어 일부 합의금은 소프트웨어 업체측과 나누지 않고 독식했다는 판단에 서다.

그러나 사건을 지휘한 검찰은 "법무법인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고, 사건을 수임한 K 변호사와 함정 단속을 벌였다는 브로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두 차례에 걸쳐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은 또 법무법인의 횡령 혐의 수사를 위해서는 계좌 추적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찰 주장에 대해 "계좌 기록은 없어지는 증거가 아니기 때문에 증거 보강 없이는 이 또한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사건을 맡은 수임 K 변호사 역시 "당시 소프트웨어 업체측과 불법 복제 프로그램 유통 문제에 대한 소송과합의를 위임받아 용역업체에서 단속된 업체에 대해서는 합의금을 받거나 합의하지 않을 경우 고소했다다"라며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검찰의 경찰 길들이기'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서울동대문경찰서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보관하고 있는 합의서와 합의를 종용하는 법무법인 사무장과의 대화 내용이 녹취된 테이프를 검찰에 제출했다"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영장 신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것은 사건 당사자인 K 변호사가 검찰 고위직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준항고 신청을 접수 받은 법원은 어제 검찰과 경찰에 10일 이내에 입장을 제출하라고 해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그 만큼 지연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디지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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