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연금 개혁 반대하는데…" 대선 감안하면 사실상 물 건너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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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공무원연금 개혁이 뒷걸음질치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 개혁을 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특히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와 행자부의 협의 과정에서 정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발전위의 한 관계자는 "이용섭 전 행자부 장관 재임 때는 발전위 위원들이 압박감을 느낄 정도로 개혁안 마련을 재촉했는데 장관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의 자동 증액과 관련된 기준이다. 현재 공무원연금 지급액은 소비자물가와 현직 공무원의 임금 상승률을 반영해 자동 증액된다. KDI와 발전위는 이를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단일화하거나 증액분을 줄이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연금 지급액 증가 속도를 3분의 1 정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행자부 논의 과정에서 기존 방식을 거의 유지하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근무 연수에 따른 연금 지급률 산정 기준, 보험료 인상 일정 등도 후퇴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이런 식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이 뒷걸음질치다 개악됐다. 1999년 당시 정부는 연말까지 개혁을 약속했다. 현재의 발전위 격인 공무원연금제도기획단은 그해 8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청회는 10개월 뒤인 2000년 6월 열렸다. 4월에 있었던 총선을 의식해서다. 그 사이 보험료율을 15%에서 21%까지 인상하려던 안은 17%까지 올리는 것으로 바뀌었고, 오히려 연금 적자를 국고에서 메우는 조항이 신설됐다.

올해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상호 관동대 교수는 "연말 대선이 있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정부 안이 나와도) 국민연금법 개정안처럼 수년간 국회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형표 KDI 선임연구위원은 "공무원들이 고통 분담을 하지 않는다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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