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일본 격투기 영웅 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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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유도 국가대표를 지낸 추성훈(32.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얼굴사진)이 지난해 12월31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격투기 연말 최대 이벤트인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일본 격투기 영웅 사쿠라바 가즈시를 1회 TKO로 꺾었다.

추성훈은 2004년 K-1 히어로즈 부문(그라운드 기술을 허용하는 자유 격투기) 무대에 진출했고, 2년 만에 라이트 헤비급 정상에 올랐다. 사쿠라바는 프라이드(온몸을 사용하는 자유 격투기)에서 1990년대 일본 격투기를 점령했던 브라질 그레이스 가문의 선수들을 차례로 꺾으며 일본의 격투기 영웅이 됐으며 지난해 초 K-1으로 전향했다. 추성훈과 사쿠라바의 경기는 K-1 최고의 빅매치였고, 그 대결에서 추성훈이 완승을 거뒀다.

추성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복을 입고 링에 올랐다. 오른쪽 팔에는 태극기, 왼쪽 팔에는 일장기가 새겨져 있었다. "K-1에는 국적이 없어 좋다"는 추성훈의 인생에는 부침이 많았다.

추성훈은 경기에 출전할 때 늘 오른팔에는 태극기, 왼팔에는 일장기를 새겨 넣는다. [중앙포토]

일본에서 태어난 추성훈은 재일교포 4세다. 일본 대학유도선수권을 3연패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으나 한국 국적이어서 일본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그는 "귀화하면 영입하겠다"는 일본 실업팀의 구애를 뿌리치고 1998년 한국 무대에 진출했다. 그러나 추성훈은 한국에서도 번번이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2000년 단 한 번 대표에 선발된 적이 있었다. 몽골 아시아선수권에서 그는 전 경기 한판승을 거두며 대회 MVP에 올랐다. 그러나 그 뒤 또다시 대표 선발에서 탈락하자 "한국은 실력우선주의가 아니다. 일본에 가서 유도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2001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추성훈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한국 선수를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2005년 11월 추성훈은 K-1 서울 대회를 치르기 위해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팀 대표를 맡았다. 국적이 중요치 않은 이벤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승리를 거둔 뒤 서툰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본인이에요. 그런데 내 가슴 속 피는 한국인이에요."

그 뒤 인터넷에는 수많은 팬카페가 생겨났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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