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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재외국민에 참정권 다시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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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한민국 헌법 제24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1972년 유신 후 선거법에서 부재자 신고 대상을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거주자로 제한해 사실상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박탈해 버렸다.

2005년 8월 4일 개정된 법률에는 국내에 3년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 영주권자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으나, 현지에서 시민권을 취득한 재외동포는 물론 장.단기 체류 재외국민도 한국의 각종 선거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유보돼 있는 상태다. 그래서 2005년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영주권자 170여만 명, 단기 체류자 90만여 명, 유학생 24만여 명 등 280여만 명은 아직도 한국의 선거에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30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는 국가다. 심지어 한국에서 재외국민 국내거소 신고증을 발급받아 거주하는 5만 가까운 재외국민마저 모든 의무는 다하면서도 한국의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재외동포들은 30여 년 이상 유보된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한국 정부에 수차례 요청했고, 헌법소원.국회 입법청원을 제기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만큼 참정권 회복은 재외동포들의 염원이지만, 그들은 아직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03년에 이어 지난해 말 선거관계법 등의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의견에 포함된 유권자 권리 확대 조치를 보면 해외에 단기 체류하는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의 15대 대통령선거에선 39만 표, 2002년 16대 대선에선 59만 표 차로 당락이 결정됐다. 그런 의미에서 280만여 명의 재외동포는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각 정당이 유.불리를 저울질하면서 재외국민의 참정권 회복 문제를 시간 끌고 있는 것이다. 일본.미국 등의 동포 중에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생기는 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거주 국가에 귀화하거나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채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국회와 정부는 국가와 민족의 자산인 재외동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인 참정권을 하루빨리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국제화로 세계가 한 마을이 되는 시대다. 이제는 재외동포들이 국가에 대한 귀속감과 책임의식을 갖게 하고, 국가 발전에 동참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재외국민의 참정권 회복은 국가의 외연을 확대하고 국민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는 아주 정당한 것이다. 정당의 이해득실, 국가공무원의 업무상 문제, 교민사회의 분파.갈등 등 어떤 이유로도 이를 지체해선 안 된다. 올해는 재외동포들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길 기대한다.

박채순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