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회담에 오만한 소련/김진국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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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소 양국정상의 제주도회담을 지켜보면서 왠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제주도회담을 6일 앞둔 13일까지 정부는 회담장소조차 결정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은 이날까지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도착시간을 알려오지 않고 3∼4시간이라는 체류시간만 통고해 왔다.
외무부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낮시간에 도착할 경우 중문단지의 특급 S호텔로 하고,늦은 시간에 도착할 경우 공항에 가까운 G호텔로 정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려했으나 결국 도착시간도 모른채 전전긍긍하다 일단 S호텔쪽에 준비를 하기로 했다.
소련측은 또 양국 정상이 논의할 의제는 물론 이 문제를 논의할 방식이나 선발대 파견일정,공식 수행원명단에조차 입을 다물고 있다. 이같은 소련의 일방통고식 정상회담은 이미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한 바 있다.
외무부 당국자는 『그것은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아직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고 지난해 미국 방문때도 일정을 수시로 변경해 미국측이 곤욕을 치렀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러한 소련의 파행적인 외교행위는 정상회담 성사과정에서 이미 드러난바 있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소련의 이러한 오만한 태도에 대해 『실무자가 협의해 건의하면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유민주국가의 대통령과 전체주의국가의 대통령 사이에는 스타일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물론 한소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소련보다 우리에게 더 큰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굴욕적이기까지한 과정을 밟아가며 굳이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지 의문이다.
크렘린의 상식을 벗어난 외교행각과 우리측의 지나친 저자세 외교를 보면서 우리가 아직도 국제정치의 당당한 일원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변방에 머물고 있다는 서글픔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자격지심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상외교는 전시적 효과에 지나치게 매달린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올때는 휴일에 오기도 하고 숙소를 주한미군 병영으로 한적도 있다. 한국에 들른다는 사실하나로 생색을 내는 것이다.
최근 미국측이 우리의 정상외교에 대해 빈정댄 것도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외교의 당당한 본모습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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