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안좋은 『미인도』 공방/이창우 문화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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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천경자씨(66)의 『미인도』를 둘러싼 가짜시비사건은 마치 거꾸로 된 「솔로몬의 재판」을 지켜보는 듯하다.
어머니(작가)는 자신이 낳은(?) 자식(작품)을 남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주변에서는 모두 『당신의 자식이 틀림없다』고 몰아세우는 형국이다.
「지혜로운 솔로몬」이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과연 어떻게 명쾌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작가와 전문가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 보니 솔로몬의 지혜라도 빌리고 싶은 심경이다.
미술작품의 진위를 가리는데는 무엇보다 작가의 주장이 가장 앞선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 또한 비중 있는 판단자료가 된다.
이번 『미인도』 시비는 지금까지의 진행결과를 놓고 볼 때 작가가 불리한 쪽으로 일단 결판이 난듯하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평론가·화가·화랑대표 등 전문가들의 안목과 경험을 토대로 진품판정을 내렸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여기에 과학적 조사결과까지 보태 이 판정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감정결과를 「확정판결」로 인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감정위원회나 국립현대미술관은 법률적으로 공인된 감정기구가 아니다. 이들의 발표는 사실상 「권위있는 판단」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권위 있는 판단」이 하나의 결론으로 통일되고 있다면 이번 사건은 작가의 「착각」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가정위에서 볼 수도 있겠다.
작가 천씨는 지난달 자신의 작품을 베낀 가짜 그림사기단이 검찰에 구속되고 강남 J화랑에서 자신이 가짜라고 본 작품이 전시되는 등 그동안 가짜그림에 대한 피해의식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설령 작가의 「착각」으로 이같은 논란이 벌어졌다고 해서 작가의 인격이나 작품세계까지 비판받아서는 안될 것 같다.
「확정판결」이 어려운 현 시점에서 이번 사건은 이쯤에서 덮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미술계의 권위」와 「한 소중한 원로화가」가 더이상 상처받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또 대중적인 화젯거리로 요란떠는 것은 우리 미술계에 하등 도움이 안된다.
다만 차제에 앞으로는 이같은 시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술계가 불신감을 씻고 권위있는 공식 감정기구 설립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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