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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윤리 부재 참교육으로 회복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20년 전 미국의 어떤 명문대학의 박사학위논문 심사에 낙방한 학생이 심사교수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또한 학점을 박하게 준 교수를 협박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미국 대학의 캠퍼스 인에서는 흔하게 듣는다. 어디 그뿐인가. 중공의 문화혁명 때는 학생들이 집회에서 공공연히 특정교수의 인격을 시비하고 봉변을 주는 일이 다반사로 등장했었다.
행동의 원인과 그것이 빚어진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대학 캠퍼스에서도 최근 교수에 대해 과격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벌이는 사건이 수시로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대학과 사회에 실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스승을 부모처럼 존경해온 전통적 윤리사상이 아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주 먼 이상적인 신화로만 남아있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의 특수성울 과신해서가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건 스승을 존중하는 보편적 윤리가 우리나라에서도 흔들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음에 당혹해 하는 것이다.
교수에게 폭행을 가하고 총장의 사진을 짓밟는 일련의 사건은 많은 언론 매체들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대학윤리의 붕괴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도 하나의 인간관계이고 거기에는 반드시 조화와 화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견해와 입장의 차이, 갈등과 마찰이 존재할 수 있음은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선과 정당한 행위규범을 과격하며 극단적인 방법으로 깨버리는 언행이 캠퍼스 안에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대학의 윤리적 불안증세를 노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 대학을 좌절시키고 혼미한 상태로 표류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과도기적인 진통이며 거기에서 비롯되는 아픔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정당한 것으로 옹호하거나 수수방관해도 잘돼 갈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론을 펴자는 입장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난 대학의 불행한 사태와 진통을 대학 구성원들이 함께 아프게 생각하고 자생하며 자구하는 노력을 한다면 오히려 더 새롭고 의미 있게 조율된 대학의 질서와 윤리를 강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노력에는 교수들이 앞서야 한다. 교수는 미완성의, 그러므로 무한한 가소성을 지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그들의 고민과 갈등을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인색하기조차 하였다. 그들이 선택할 선하고 바른 행동규범을 기성의 윤리적 가치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의 결과를 그러한 기준의자에 맞추어 평가해 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또한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지성인을 길러내기 보다는 장차 사회적 지위획득을 위한 지식전수에 더욱 몰입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 대학교육은 최근에 발생한 당혹스러운 학생들의 특수한 행태를 예방하는데 미흡하거나 부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예방하고 대학이 진정한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을 합리주의와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선하고 바른 행동규범의 실천자로 길러야하며, 바로 그것을 착수할 시기가 지금이라는 여론에 많은 교수들이 동조하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대학의 윤리적 불안증세를 스스로 치료하고 고쳐나갈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그러한 대학의 자기 경신을 위한 교육에 우선적으로 포함해야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첫째는 이성적 판단능력을 고양하는 교육이다. 학생들이 감정에 따라 사물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에 따라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빚어내는 인과관계와 논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면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 과격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행동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둘째는 인간존중의 규범의식을 강화시키는 교육이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대인관계에 있어 폭력적인 언행의 사용은 비인간적이다. 인간은 상대가 누구든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이며 그러한 존재로서 대해야할 규범적 의식을 교육내용에서 강화해야할 것이다.
셋째는 감정을 이입하는 행동능력을 강화하는 교육이다. 감정 이입이란 나 자신이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에 소의 역지사지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남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통찰하고 그것을 내일처럼 느끼는 행동이다. 이와 같은 행동능력을 학생들에게 강화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대학에서의 학생과 교수간의 관계는 진실로 지성적인 의미가 넘치는 선하고 바른 관계의 극치를 이루게 될 것이며 대학에서 그러한 행동규범을 익힌 젊은이들이 우리의 미래사회를 구성하는 경우 진정한 합리적 민주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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