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의 보천보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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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운데 한가지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3월15일자 (일부지방16일·연재 9회)의 「1944년 가을 일본군 평양 제44부대한국인 범사들의 반일궐기계획」가운데 등장하는 보천보사건에 관해서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국인 병사들의 목적지는 한만국경의 보천보였고, 그곳은 5년전(1937년5월)우리 독립군이 일본 경비대를 전멸시컸던 유명한 곳으로 당시 평양으로부터 조선독립군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며…」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의 착각이거나 아니면 잘못 전해진 얘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싶다.
보천보란 함경남도 갑산군 진천면 보전리의 약칭이며 그곳은 압록강 상류를 사이로 중국장백현과 마주보고 있는 보천면사무소와 일경주재소, 간이 우체국, 소학교, 영림소 등이 소재한 국경 촌락으로 당시 이곳엔 일본군 경비대는 주둔하지 않았다. 다만 일경주재소에는 순사부장 히라야마(평산속·32)외 6명의 경찰관이 상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37년5월 우리 독립군이 보천보에서 일본군 경비대를 전멸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37년6욀4일 밤 중국공산당 만주생위소속 게릴라집단인 동북항일련군사제1로군(총사령 양정우)예하 제6사(사장 김일성, 정치위원 위민생) 명력 70∼80명(중국인, 중국적 한국인 혼성)이 보급투쟁 목적으로 보천보를 습격, 면사무소·우체국·소학교 등에 방화하고 주민의 재물을 약탈해 현지 청장년들을 강제동원, 약탈물자를 만주당 근거지로 운반한 사실은 있다.
이밖에 중국 측의 한 역사서도 『당시 중공당만주생위소속 군사간부 양정우가 1936년6월 휘하 홍군 유격대일부를 북조선 동북지역 습격대로 파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호화『중국신민주주의사』 일역판, 동경대학중국연구회,1965,163∼164면).
오늘날 북한에서는 보천보 사건을 두고 당시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대 부대를 친솔,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해 일본군 대부대를 전멸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만의 하나라도 그 같은 범죄적인 역사 왜곡날조에 현혹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기봉 <서 울 영등포구 대림동·전 국제문제조사연구소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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