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영화 홍보지만 … 너무한 거 아닙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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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니 부시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현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부시 암살'이란 가상 현실을 통해 드러내는 문제작이더군요. 9월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선 국제비평가상을 받았죠. 수상 이유는 "현실을 대담하게 왜곡해 보여주며 더 큰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2007년 12월 부시가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알 수 없는 총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이어 현장 부근에 있던 시리아 출신 이민자가 용의자로 지목되죠. 그러나 그가 범인이란 결정적 증거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억지로 범인으로 몰기 위해 증거가 조작되고 인권이 무시되거든요. 정치권은 겉으론 부시를 애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건을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법과 정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법원마저 공정성을 잃고 편향된 판결을 내리고 맙니다.

이 영화는 올 초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관타나모로 가는 길'(감독 마이클 윈터바텀)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고귀한 가치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목 앞에서 실종되는 모습을 엿볼 수 있거든요. 지어낸 이야기지만 자료 화면을 섞어 기록영화인 척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든 점도 같죠. 감독도 둘 다 영국인입니다.

영화 마케팅에 대해선 싫은 소리를 좀 해야겠습니다. 누구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겠죠. 그게 민주주의니까요. 그러나 설사 반대한다고 해도 대놓고 증오를 부추기고 죽기를 바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충격!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사망"이란 제목을 달아 신문 호외처럼 출근길 시민들에게 뿌리는 것은 너무 심했습니다. 토론토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이란 영화 소개도 명백히 과장된 것입니다. 정확하게는 영화제 주최 측이 아니라 국제영화비평가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 Critics)이 주는 상을 받았거든요. 올해 토론토영화제에는 7개의 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죠.

영화를 홍보할 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다소 '오버'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도 분명히 있습니다. 과장되고 자극적인 홍보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궁극적으론 관객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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