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이와 호흡 잘 맞아 기뻐|코리아 팀 여 주전 홍차옥의 나가노 합동 훈련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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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분단 46년만에 극적으로 단일 팀을 구성한 코리아 탁구 팀에 대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나가노에 이어 나가오카에서 전지 훈련중인 코리아 팀을 취재하고 있는 본사 방원석 특파원이 여자 팀 주전 홍차옥 (21·한국화장품)의 훈련 일기를 입수했다. 다음은 1주일간의 일기를 반 정도로 줄인 전문이다. <편집자주>
◇91년3월25일 월요일
외국 경기를 이때까지 많이 다녀봤지만 오늘 아침 기분은 여느 때와 달랐다. 46년만의 남북 탁구 단일 팀의 주인공으로서 북한에서 만든 단복을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KE002를 타고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니 주체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솟아오른다.
나리타공항을 나서는 순간 우리 나라 지도가 그려진 깃발을 흔들며 『코리아 만세』를 외치는 교포들의 환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잠시 후 공항 귀빈실에서 기다리던 북한 선수들과 상봉했다.
같은 단복, 같은 가방…. 우리와 똑같은 차림을 한 북한 선수들.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우리는 하나가 된 것일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동안 국제 경기에서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던 북한 선수들.
나는 우선 나의 복식 파트너를 찾았다. 순복이가 나를 반긴다.
첫 연습 장소인 나가노로 향하는 3시간의 긴 여행 동안 우리는 기차 안에서 북한 선수들과 웃음꽃을 피웠다.
나가노 숙소에 도착해 단장님과 선수들의 소개가 끝나고 우리는 더 이상 남과 북이 아닌 코리아라는 단일 팀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서로 헤어져 자기 방으로 가면서 이날 밤 이번 단일 팀이 꼭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되고, 그러기 위해 이번 세계 대회에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생각에 젖는다.
◇3월27일 수요일
남북이 하나가 된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언제나 경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던 모습들이 전혀 아닌 새로운 모습들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장난치며 서로 웃고 있는 것이다.
『단결』이라는 힘찬 구호를 외치며 시작하는 단일 팀의 합동 훈련은 우리들이해오던 연습 방식대로 여서 인지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서로가 다른 전형의 장점을 갖고 있기에 훨씬 더 다양한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이 정도의 힘이면 충분히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순복이와 한조가 되어 이분희-현정화 조와 경기를 벌였다. 순복이와 생각보다 호흡이 잘 맞고 뜻도 서로 잘 통하는 것 같다. 순복이도 나와 한 복식조가 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과자도 나눠먹으며 저녁에는 한국에서 올 때 준비해온 조그만 선물을 건네줬다.
화장품과 스타킹 등 우리 여자 선수들이 필요한 것을 주자 이들의 표정은 밝아졌고 순복이는 그 자리에서 화장품을 사용해보더니 『냄새가 좋다』며 내 손을 꼭 잡는다.
◇3월29일 금요일
여기는 분명 일본인데 워낙 우리끼리의 기분에 들떠서인지 낯선 기분을 느끼지 못하겠다.
북에서 오신 김형진 단장님도 꼭 우리를 따라다니며 따뜻하게 격려해 힘이 솟는다.
연습장을 오가는 도중에도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나의 살던 고향』 등을 부르며 노래자랑을 하기도 했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서 함께 부르고 합창을 하면 역시 우리는 하나가 되어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남과 북이 비록 탁구에서지만 하나가 된 이상 우리의 힘으로 꼭 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오늘은 유난히도 나의 짝 순복이가 서울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김치를 맛있게 먹는다.
지금 이 분위기, 웃으며 오가는 정다움 속에 오늘도 만족하며 남은 기간도 더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우리 코리아 선수단에게 용기와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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