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강변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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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마음이 괴로워서 강변을 거니노라니
지난 날 죄와 허물 응어리진 회한들은
아득한 현기증으로 모래밭에 흩어지고.
철새들은 구슬피 울며 떼지어 날아 가는데
고요한 머물음의 그 뜻 하나만으로
발끝에 툭툭 채이는 돌이고도 싶었다.
최경자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남산 연립 가동 309호>

<꽃샘 바람>
동상에서 깨어나는
풀뿌리와 나목들을
청진기로 진맥하고
산소호흡 시켜놓고
메마른 마디마디에
푸른 피를 수혈한다 `
어지러운 소요 속에
매연으로 찌든 거리
때묻은 부신들을
가랑비로 씻어내고
화신의 깃발을 들고
산을 돌아 배상한다.
손춘자<부산시 동구 범일1동 111의6>

<윤사월>
네가 잠시 앉았다 떠나는 자리에는
옥보라 제비꽃이 헛소문처럼 피어나고
하루를 접는 저녁놀 홀로 앓고 있구나.
비를 닮은 이름 석자 가지 말라 잡아 끌면
반쯤 그린 무지개가. 가슴 한 켠에 걸리고
가려는 마음도 풀려 제비 따라 오는가.
최명숙 <서울 동대문구 이문3동 53의15>

<경운기>
교통법 조항에
이름 없는 경운기
볏집을 그뜩 싣고
한 길을 나섭니다.
딛고 설 땅 잃은 울분
폭발음으로 부서진다.
치닫는 경쟁 속
굴레쓰고 주저 앉아
저주도 때가 되면
미덕으로 피는 향기.
제치고 가는 세상에
왼쪽 양보 기어간다.
신동익<경남 울산군 삼남면 가천리 690의 3>

<용마루>
용마루 흘러 내린
우아한 곡선이며
빗질하는 여인의
모시 저고리 배래선
허공을 뻗어 내린 슬기
우리 님의 솜씨였네.
조호영 <부산시 금정구 부곡3동 219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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