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포럼|교과떠나 「삶」을 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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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대 학생 생활 문제 연구소는 최근 2년간 교수와 학생간에 격의 없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놓고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정규 교과 과정이 담당할 수 없는, 그러나 결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정신적 영역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있다.「서울대인의 포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프로그램은 매주 일정한 주제를 선정, 관련 분야의 교수를 초빙해 인생의 체험이 실린 강연을 들은 뒤 학생들과 함께 토론함으로써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행사다.
학생 생활 연구소는 지난주부터 청년기에 누구나 겪게되는 문제를 하나의 연속물로 묵은「방황·고통 그리고 길」을 주제로 매주 수요일 오후 4주에 걸쳐 토론 행사를 갖고있다.
지난주에는 윤석철 교수 (경영학) 가 「방황」을 주제로, 이번 주에는 손봉호 교수 (사회교육) 가 「고통」을 주제로 각각 강의와 토론을 이끌었으며 다음주에는 정진홍 교수(종교학)가 「길」을 주제로 강의·토론을 맡는다. 마지막 주에는 김신일 교수 (교육학)주도 아래 주제 강의를 했던 세명의 교수가 다함께 참석, 종합적인 토론의 장을 꾸미는 것으로 되어있다.
2주에 걸친 강의 및 토론에는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은 물론 자신의 진로 모색·가치관 정립을 놓고 고민하는 재학생·대학원생들 2백여명씩이 참석했다.
첫째주 강의에서 윤 교수는『젊은이들은 전공이나 직장·배우자 문제 등과 관련, 방황하는 수가 많다』고 말하고 『방황은 경험을 다양하게 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는 것은 아니나 오래 계속되면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어 해롭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방황은 말하자면「선택」과 「포기」를 둘러싼 갈등 상태』라고 규정하고 『방황을 빨리 끝내려면 선택과 포기가 분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것의 대가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따라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자신의 방황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이라고 결론짓고『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나의 경우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을 통해 남을 위해 봉사하고 그 결과가 좋게 나타날 때 느끼게되는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의 강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한 학생은 『가보지도 않은 앞날을 놓고 선택과 포기를 분명히 하기가 쉽겠느냐』고 항변 (?)했다.
윤 교수는 이에 대해 『물론 많은 노력과 고통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과 고통은 숭고하고 거룩한 것이며 이를 두려워해 타인의 손에 선택과 포기를 맡겨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성 문제를 놓고 방황하고 있다. 친자식이라 생각하고 도움말을 달라』고 했다.
윤 교수는 『인생의 체험을 통해 볼 때 남자의 여성관은 세 번 변한다 할 수 있다. 청년기에는 「매력」, 장년기에는「가치관의 일치」, 노년기에는 「의지」에 큰 비중이 놓여진다. 이 같은 점을 잘 고려해 보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두 번째주 강의에서 손 교수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겪게되는 고통의 의미와 극복에 대해 강의했다.
손 교수는 『인간에게는 사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 차원의 고통에 덧붙여 정신적 고통이라는 이중의 아픔을 겪게된다』며 『특히 인간의 고통은 거의 대부분 다른 인간에 의해 가해지는 것이므로 인간은 그 고통을 막고, 줄이고, 제거할 의무가 있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동정심을 가져야하는 것』이라고 풀어나갔다.
손 교수는 『고통이 두려워 아예 고통 받을만한 일을 시도하지도 않거나, 술·마약·쾌락에의 탐닉 등 도피적 수단에 의지하려하면 고통에 먹히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고통은 인간을 성숙시켜주며 다른 사람의 의무감과 동정심을 유발, 인간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도 한다』고 역설했다.
이번 행사와 관련, 두 번에 걸친 강의·토론에 모두 참석했다는 한 학생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어떤 해결책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며 교수님들의 우리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포럼」프로그램은 성숙한 인격자를 키우는 인간 교육 실종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대학 교육 현실에 교수와 학생이 교과를 떠나 인생 문제·사회 현상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받고 있다. <이규연·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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