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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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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1년 9.11 테러 직후 한동안 미국의 라디오 방송에서 사라진 노래가 있었다. 정부는 즉각 '대테러 전쟁' 준비에 착수하고 시민들은 너나없이 성조기를 사서 차에 달고 다니던 무렵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평화를 호소하고 반전을 부르짖는 노래를 틀기에는 방송사들도 부담을 느꼈음 직하다. 대표적 노래가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었다.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면/별로 어렵지 않아요/서로 죽일 일도, 목숨 바칠 필요도 없는/상상해 보세요, 종교 없는 세상을/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비틀스가 해산된 이듬해인 1971년, 존 레넌은 그렇게 호소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베트남전의 참상이 지구촌 곳곳의 반전 운동 열기를 고무시키던 시절이었다. 그에 앞선 69년, 존 레넌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가 받은 훈장을 돌려드릴까 합니다. 그건 영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미국을 지원한 데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존 레넌이 71년 런던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사찰에 나섰다. 당시 공화당 정부는 반전 운동이 닉슨 대통령의 재선에 최대 난관이라 보고 있었다. 실제로 공화당 전당대회 방해 시위 주동자에게 거액을 기부했다는 정보 등 존 레넌 동향을 FBI가 백악관의 대통령 보좌관 홀드먼에게 보고했다는 기록도 전해져 온다. 홀드먼은 나중에 워터게이트로 감옥 신세를 져야 했던 인물이다. 존 레넌 본인이 방송에서 집 전화가 도청되고 있다고 호소한 적도 있었다.

지난주 FBI가 25년 동안 공개를 거부하던 마지막 존 레넌 파일이 공개됐다. 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것만은 안 된다"고 버텨 의문이 무성하던 10건의 파일이다. 하지만 내용은 대부분 이미 알려진 사실들이었다. "레넌은 좌파 급진 단체와 연계가 없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러자 화살은 FBI의 과도한 비밀주의에 집중되고 있다.

생전의 존 레넌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정치적 해석을 부담스러워 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그 어떤 정치운동에도 속해 있지 않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자신들의 감정을 나타내지만, 나는 그저 우두커니 앉아 노래로 내 감정을 그려낸다"라고. 음악을 음악으로만 즐길 수 있는 시대, 존 레넌이 갈구한 것은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