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 갈등의 핵 '영장전담판사' 보는 두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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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문화관광부 전.현직 고위 간부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한 사람(영장전담판사)한테 너무 큰 권한이 주어진 것 아닌가." 이인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21일 '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 사건 브리핑 중 "영장전담판사제도가 개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변현철 공보관은 "언론이 '노코멘트'라는 말까지 보도하니 그냥 '침묵'이라고 하자"고 했다. 하지만 일선판사들은 이 차장검사의 주장에 대해 "극단적인 주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차장검사가 거론한 영장전담판사는 서울중앙지법 민병훈.이상주(이상 사시 26회) 부장판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부장판사와 민 부장판사는 각각 올 2월과 8월 부임했다. 두 부장판사는 부임 후 대검찰청 중수부(론스타 사건), 서울중앙지검 공안부(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시위) 및 특수부(사행성 게임 비리 의혹 사건)와 영장발부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 "영장판사가 수사 통제"=법원과 검찰 간 '영장 갈등'의 불똥이 영장전담판사제도로 튀고 있다. 영장전담판사제도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제도'(일명 영장실질심사제도)와 함께 무분별한 영장 발부를 막는 장치로서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영장발부를 둘러싼 법원-검찰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제도의 도입 취지와 달리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현재 검찰이 계좌 추적을 하려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만 한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영장전담판사가 구속영장은 물론 압수수색영장 발부업무까지 맡고 있다. 영장전담판사가 수사상황을 들여다보고 사실상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부의 한 판사는 "영장전담판사제도는 전문성과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 "대법원 눈치보기 우려"=검찰이 논란이 된 대법원 재판예규(1084호)의 폐지를 주장한 배경에는 영장 기각 문제가 깔려 있다. 대법원 예규는 중요 사건의 경우 압수수색영장 청구단계부터 대법원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검찰은 영장전담판사가 대법원과 '의견조율'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은 사실상 대법원장과 가장 코드가 가까운 사람으로 봐야 한다"며 "지금까지 영장전담판사 인사를 보면 대부분 좋은 보직을 받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장래가 보장된 자리에서 대법원장과 다른 성향의 결정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민병훈 부장판사는 "법과 원칙에 따를 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며 "영장 발부는 범죄에 대한 검찰의 소명 내용과 헌법상 기본권 등을 침해하는지를 보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별 잡음이 없었던 압수수색영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데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도 무관하지 않다. 이 대법원장은 올 9월 하순 대구를 방문했을 때 "검찰이 단서가 잡힌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을 때 왜 법원이 도와야 하느냐"고 질책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영장전담판사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시위 폭력행위자 구속영장 기각에 불복, 이날 법원에 준항고했다. 검찰은 준항고가 기각 또는 각하되면 대법원에 재항고할 계획이다.

장혜수.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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