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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서명숙의 인생 하프타임 산티아고 순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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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의 안개가 걷히는 모습. [여행 작가 김남희씨 제공]

글 싣는 순서

(1)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길로

(2) 아, 피레네- 그대를 얕봤네

.....9.11~12/운토~론세발레스

(3) 산티아고 사인을 찾아라

(4) 순례자 먹여 살린 한국 부침개

(5) 삶의 순례자들

(6) 메세타 평원에서 아리랑을

(7) 에스파뇨는 왜 행복할까

(8) 가난 속의 사치, 빗속의 자유

(9) 달과 별이 지켜준 마지막 사흘

(10) "여기가 피니스테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석.

# 출발은 가뿐했다

피레네를 눈앞에 두고서도 '피레네를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프랑스길'을 걷는 이들은 두 갈래로 나뉜다. 생 장피드포르에서 론세발레스까지 걸어서 국경을 넘는 사람과 피레네를 우회해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 까짓것 북한산 예행연습도 몇 번 해봤겠다, 걸어서 넘는 쪽으로 주사위를 던졌다.

엄청난 성량의 코골이로 밤새 괴롭히던 미국 여자 둘은 신새벽부터 짐을 챙겨 길을 떠났고, 나는 짐 일부를 덜어 목적지인 산티아고로 부치려 우체국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산티아고 우체국은 이렇게 받은 짐을 순례자가 도착할 때까지 최장 두 달간 무료 보관해 준다).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는 한국 아줌마와 영어를 도통 못 알아듣는 우체국 직원이 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시각은 오전 11시가 다 돼서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새벽에 떠나면 2, 3시쯤 도착한다고 했으니 해질 무렵엔 하산할 수 있겠지' 하고 산으로 향했다. 가끔씩 자전거족들이 "부엔 카미노(좋은 순례길을 빌어주는 인사말)"라고 외치면서 지나쳤지만 걷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생초보 산꾼은 이런 상황이 내포한 위험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전문 산악인의 조언대로 한 시간 간격으로 등산화까지 다 벗고 휴식을 취했다. 미풍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고, 초록은 멀고 가까움에 따라 빛깔을 달리했다. 품 넓은 한라산을 닮은 피레네는 숨소리조차 의식될 만큼 적막했다. 라디오를 시끄럽게 틀어대는 등산객을 피해 자주 올랐던 강화읍 양서면 뒷산마냥.

27km에 이르는 피레네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샘.

# 피레네, 나를 용서하라

호젓한 산중에 갑자기 집이 나타나고 순례자들이 눈에 띄었다. 산중 유일의 알베르게, 오리존이란다. 산 아래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음료수나 와인을 마시는 그들 옆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잠깐 쉬었다가 오늘 안에 론세발레스까지 간다고 했더니, 옆자리의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러기엔 너무 늦었단다. 아니, 해가 중천에 걸려 있고 기운이 아직 넘치는데, 웬말인가! 서툰 영어로 우기는데 맞은편 테이블에서 독서를 즐기던 남자가 가세했다. 벌써 오후 4시인데 아직도 17㎞나 남았으니 더 이상 등반은 무리란다. 이 덜렁대는 아줌마가 그저 산 하나를 넘는다고만 생각했지, 그 산길이 27㎞나 된다는 사실을 흘려넘긴 것이다.

순례자들의 강권에 산장에서 묵기로 겨우 마음을 돌려먹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알베르게 운영자가 침대가 없다면서 "운토로 가라"고 한다. 운토? 운토가 대체 뭔데? 이곳에서 3㎞ 떨어진 피레네의 마지막 마을이란다.

되돌아가야 한다니! 이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보기 딱했던지 캐나다에서 왔다는 두 남자가 자동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자원했다.

운토는 외딴 농가 서너 채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초미니 마을. 그들 농가는 잠자리에 저녁과 아침을 곁들인 민박(하루 25유로)을 치고 있었다. 5유로, 7유로짜리 알베르게에 견주면 엄청난 가격이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숙소는 왕년에 헛간이나 마구간으로 쓰였음직한 가건물이었다.

한데 양말과 속옷을 빨아 마당 빨랫줄에 좌악 널어놓고 느긋하게 책을 펼쳐든 순간, '두두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숙소 안으로 몸을 피하자마자 바깥에서는 번쩍번쩍 우르르 쾅쾅, 천둥 벼락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창문을 닫을 새도 없이 쏟아지는 비, 비, 비…. 여주인은 자주 겪는 일인 듯 심상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문단속을 하고 갔다.

산장에서 차를 마실 때만 해도 얼마나 햇살이 찬란했던가. 민소매 반바지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니. 만일 산장에서 순례자들이 생면부지의 나를 굳이 돌려세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피레네 깊은 산중에서 천둥 소리에 떨고 장대비에 젖어 있을 것이다.

아아 피레네여! 당신을 너무 우습게 알았다, 제발 용서해 다오. 헛간 침대에 엎드려 자연을 우습게 여긴 무지와 오만을 뉘우쳤다.

피레네 너머 첫 마을 론세발레스 초입의 작은 성당.

# 두 발로 국경을 넘다

다음날 아침, 골안개가 피어오르는 피레네는 씻은 듯 푸르렀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종종 보이던 전반부와는 달리, 중반 이후의 피레네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너른 도로와 양들이 '쩔그렁 쩔그렁' 목방울 소리를 내며 풀을 뜯는 평평한 목초지뿐이었다. 비 피할 나무 한 그루 없이 사방이 탁 트인 산길을 걷자니 '오리존의 기사들'이 새삼 고마웠다.

성모상이 있는 산중턱에 이르렀다. 사방으로 겹겹이 펼쳐진 피레네 산군을 처연한 눈길로 굽어보는 성모마리아의 발치에는 돌멩이로 꼬옥 눌러놓은 가족 사진과 소망이 적힌 카드들이 수북했다. 간절한 소망을 빌기 전에 당장의 허기를 면하려고 볶은 곡식을 꺼내 씹어 먹었다. 예상보다 긴 산행 때문에 준비한 비상식이 다 바닥이 나고 말았다.

론세발레스 3.2㎞. 마지막 표지판이 나온 뒤에도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낭의 무게는 갈수록 어깨를 파고들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푸른 초장도 하루 이틀, 길고 외로운 산행에 지쳐갔다.

오후 6시. 숲 사이로 뾰족탑이 머리를 내밀더니 이어서 작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발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 낯설지만 근사했다. 북한 땅만 열려 있다면 우리도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까지도 걸어서 갈 텐데. 외부로 향한 창이 닫히면 마음도 그만큼 가둬지는 법.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국경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지구촌 시대에 치명적인 결손이 아닐 수 없다.

침대가 열댓 개밖에 없는 별장 같은 오리존과는 달리, 이곳 알베르게는 100명 넘는 순례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서 마치 군대 막사 같았다. 증명서에 도장을 받고 침대를 배정받은 뒤 근처 바에 들렀다. 국경 마을 특유의 달뜬 분위기가 감도는 바에서 인상 좋은 바텐더가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지? 일본? 중국?" "아니, 코리아." "북쪽? 남쪽?" "남쪽."

분단의 현실은 안팎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옥죈다. 그러나 '순례자 메뉴'(7유로)로 나온 바스크 지방 특유의 맛있는 생선 요리와 감미로운 와인에 심신의 고달픔이 씻긴 듯 날아가니, 난 역시 형이하학 체질인가 보다.

◆순례자 메뉴▶ 순례자들이 지나는 마을 레스토랑 중에는 이들에게 특별히 저렴하게 코스 요리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전채(프미레르 플라토)와 메인(세군도 플라토) 후식(포스트레) 등 세 코스로 구성되는데, 음료로 포도주와 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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