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CoverStory] 웰컴 투 셀프 파티 - # 2 일단 모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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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7시, 서울 부암동 산꼭대기. 허름한 단칸 기와집이 떠들썩하다. "어, 왜 이렇게 늦었어. 음식 다 식잖아." "아저씨가 시간을 잘못 가르쳐줬으니까 그렇죠." "이 꼬마들은 누구야? 되게 귀엽게 생겼네."

왁자지껄 쏟아져 들어오는 이들은 이 집 주인인 원희연(33).송혜진(32)씨 부부의 친구들이다. 그런데 나이도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김은경(29)씨는 송씨와 같은 푸드 코디네이터다. 김씨와 손 꼭 잡고 온 이는 그녀의 어머니인 임화숙(55)씨. 요리 솜씨가 대단해 송씨와 김씨가 평소 '사부님'으로 모시는 분이란다. 김씨는 앞 집에 사는 다섯.일곱 살배기 두 꼬마까지 끌어안고 왔다. "마실 오는 건데 뭘. 얘들한테 맛있는 것도 먹이고 좋잖아요." 임화숙씨의 말이다.

임지영(34)씨는 원희연씨의 친구다. 플루트 연주자인 이씨는 사진작가인 남편 이주희(34)씨와 함께 왔다. 연다인(18)양은 이제 막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 '아름다운가게' 간사인 아버지가 원씨 부부 친구라, 자신도 자연스럽게 이들의 '친구'가 됐다. 부암동 주민이자 문화기획자인 유종국(38)씨가 합류하는 것으로 1차 성원 충족. 드디어 '파티'가 시작됐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이렇게 모여요. (손님이) 열 명을 훌쩍 넘을 때도 많고요. 서너 명씩 모이는 거야 다반사죠." 송혜진씨는 "나나 남편이나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며 "살며 소중한 게 참 많지만 우리에겐 이웃, 친구들과 나누는 우정이 그중 으뜸"이라고 했다.

송씨는 손님맞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푸드 코디네이터 겸 파티 플래너라는 직업 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환한 웃음, 정성 깃든 음식 한두 가지면 충분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제일 쉬운 게 피자예요. 소스야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열려놓은 게 있고, 사거나 직접 반죽한 도우에 그것만 발라 오븐에 구워내면 되니까요. 정말 아무 것도 없을 땐 냉동만두 사다 굽기도 해요. 간장 대신 마늘소스 하나만 잘 만들어 내도 다들 너무 좋아하죠."

좋은 그릇, 고급스러운 요리는 파티의 필수 요소가 아니다. "대신 아이디어가 필요하죠. 크리스마스라면 시장에서 빨간 천 2000원어치만 사다 식탁에 깔아도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네모난 초콜릿에 나뭇잎으로 장식한 꼬치만 꽂아도 훌륭한 '요리'가 되고요. 촛불 몇 개, 와인 한 병, 거기 잘 익은 김치랑 삶은 돼지고기만 있으면 손님맞이 상차림으로 손색없죠."

음식 먹고, 와인잔 부딪치고, 그간 못 나눈 안부 전하는 사이, 구석자리 난로에선 밤이 톡 익어가고, 아이들 웃음 소리는 까르르 담장 위를 날았다.

이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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